프라하 서쪽 근교, 크르지보클라트(Křivoklát) 숲 가장자리의 작은 마을 말레 키시체(Malé Kyšice)에 부채꼴 평면의 목조주택 한 채가 들어섰다. 이름부터 선언문 같다. House That Opens Up to the Sun, 말 그대로 해를 향해 열린 집이다.
주말 별장이 모여 있던 동네에서 오래된 별장 하나를 헐고 그 자리에 지은 패시브하우스다. 마을을 향한 북쪽 두 면은 콘크리트 블록 벽으로 꽉 막았고, 정원을 향한 남서쪽 곡면에는 통째로 유리를 둘렀다. 한쪽은 닫고 한쪽은 활짝 연 이 극단적인 대비가 집의 성격을 거의 다 결정한다. 설계는 체코 건축사무소 Stempel & Tesar architekti가 맡았다. 설계를 시작한 2016년부터 완공한 2022년 사이에 팬데믹과 유럽 에너지 위기가 연달아 지나갔으니, 난방비 고지서가 뉴스 헤드라인이 되던 시절을 겪고 나서 돌아보면 이 집의 선택들은 꽤 앞서 있었던 셈이다.

연못에 비친 반원, 해가 지면 등불이 되는 집
이 집 앞에서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장면은 아마 해 질 녘 연못가일 것이다. 두 개 층 높이의 곡면 유리 안쪽에 불이 켜지면 노출된 목재 기둥과 보가 따뜻한 선으로 떠오르고, 그 모습이 연못 수면에 거꾸로 한 번 더 그려진다. 물 위에서 반원 하나가 원 하나로 완성되는 셈이다. 처마 아래 기둥 머리마다 작은 조명이 숨어 있어서, 해가 완전히 진 뒤에도 파사드의 곡선이 어둠 속에 또렷하게 남는다. 실내등을 꺼도 집의 윤곽은 꺼지지 않게 해 둔 영리한 외부 조명이다. 그리고 이 연못은 풍경을 위한 소품에 그치지 않고 빗물을 모으는 설비이기도 한데, 그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자.

해를 향해 펼친 부채꼴 목조주택
평면은 정사각형 4분의 1을 둥글게 깎아낸 모양, 그러니까 직각 부채꼴이다. 직각을 이루는 두 변은 단단한 벽이 되고, 휘어진 호는 남서쪽 정원을 향해 활짝 열린다. 건축가들은 이 집이 부채처럼 햇빛을 향해 펼쳐져 그 에너지를 받아들이고 아껴 쓴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곡면일까? 평평한 남향 벽은 한낮의 해를 정면으로 받는 데 유리하다. 반면 휘어진 벽은 아침 첫 햇살과 저녁 마지막 햇살까지 차례로 맞이한다. 하루치 햇빛을 각도별로 나눠 받는 구조랄까. 곡면은 멋을 부리려고 고른 형태라기보다 일조 계산에서 나온 답에 가깝다.

바람 맞는 북쪽은 콘크리트 블록으로 막았다
반대편 두 면은 노출 콘크리트 블록 벽이다. 바람이 들이치는 쪽을 무겁고 단단한 재료로 막은 것이다. 이 벽은 단열재를 가운데 끼운 샌드위치 구조라서, 낮 동안 받아 둔 열을 품었다가 천천히 내놓는 축열체 역할을 한다. 동시에 가벼운 목구조 전체를 붙잡아 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욕실, 기계실, 창고처럼 창이 필요 없는 공간은 전부 이 벽을 따라 줄지어 배치했다. 밝고 열린 남쪽 생활 공간과 닫힌 북쪽 사이에 일종의 완충 지대를 깔아 둔 셈이다. 사진 속 블록 모서리에는 단풍 든 덩굴이 벌써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이웃에게는 등을 돌리고, 덩굴을 기다리는 벽
도로 쪽에서 보면 이 집은 창 하나 없는 블록 상자에 가깝다. 공동 대표 Jan Jakub Tesař는 집에서 보이는 풍경이 이웃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어 아예 이쪽을 닫고, 그 면을 덩굴식물에게 내줬다고 말한다. 2년쯤 지나면 벽이 식물에 덮여 사라질 거라는 게 그의 계산이다. 미장 마감은 식물이 뒤덮으면 쉽게 상하지만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는 그렇지 않다는 이유도 덧붙인다.
벽 앞에 놓인 오렌지 컨테이너 두 개는 정원 도구와 자전거를 넣어 두는 창고다. 정원 땅속에는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립식 지하 저장고까지 묻어 두었다. 이웃과 맞닿은 면은 조용히 두고, 잡동사니는 바깥으로 빼서 집 안을 가볍게 한다. 별장이 다닥다닥 붙은 동네에서 꽤 현명한 거리 두기다.

처마가 된 보, 패시브하우스의 여름과 겨울
천장을 받치는 목재 보는 유리 파사드 밖으로 길게 뻗어 나와 2층 발코니의 바닥이 되고, 동시에 1층 테라스의 지붕이 된다. 깊게 튀어나온 이 처마가 한여름 높이 뜬 해를 가려 실내가 과열되는 걸 막는다. 해가 낮게 뜨는 겨울에는 빛이 처마 밑으로 깊숙이 들어와 난방비를 덜어 준다.
앤트러사이트 그레이 프레임의 삼중유리 창에는 유리 사이에 블라인드가 내장돼 있다. 설계팀은 이 블라인드의 차양 효과가 외부 블라인드와 견줄 만하다고 설명한다. 보와 보를 잇는 강철 접합부와 타이로드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구조가 어떻게 서 있는지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을 수 있는 집이다. 목조 패시브하우스가 콘크리트 패시브하우스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면 앞서 소개한 〈목조 패시브하우스와 콘크리트 패시브하우스의 차이와 장단점〉를 함께 읽어 보면 좋다.

반원형 거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정원이 보인다
1층은 거실과 주방, 다이닝이 칸막이 없이 이어진 반원형 공간이다. 소파에 앉든 식탁에 앉든 시선은 자연스럽게 곡면 유리 너머 정원으로 흘러간다. 바닥은 그레이 콘크리트, 천장은 밝은 목재, 벽 한쪽은 블록이다. 차갑고 무거운 재료는 아래와 뒤에, 따뜻하고 가벼운 재료는 위와 앞에 두니 공간이 꽤 또렷하게 읽힌다.
다만 인테리어 자체는 우드와 화이트, 그레이로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브라운 가죽 소파 하나가 거의 유일한 색 포인트라 사진만 보면 심심하다는 인상도 남는다. 이 집의 볼거리는 가구보다 머리 위 구조라는 걸 설계자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집의 심장, 장작 난로를 감고 오르는 계단
부채꼴의 꼭짓점, 그러니까 집의 한가운데에는 장작 난로가 놓였다. 열교환기를 단 FireTube 제품으로, 해가 짧은 겨울날 집 전체의 난방을 거든다. 그 난로를 빙 둘러 강철 계단이 감기듯 올라가 2층 침실로 이어진다. 불을 피우면 데워진 공기가 트인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오르기 쉬운 배치다.
공간 심리로 봐도 영리한 자리다. 불은 예부터 사람을 끌어모으는 장치였고, 집 안의 동선이 모두 이 한 점을 지나가게 해 두면 가족은 오가다 자연스럽게 마주친다. 바깥으로는 해를 향해 펼쳐진 부채꼴 평면이 안쪽으로는 불 하나에 모이는 셈이다.

방사형 목구조, 천장에 그려진 해시계
계단 바로 아래에서 고개를 들면 이 집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굵은 목재 보들이 중심의 강철 계단과 연통을 축으로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평면이 부채꼴이니 구조도 부챗살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래도 이걸 마감재로 덮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 결정이 공간의 인상을 통째로 바꿨다.
천장을 올려다볼 때마다 이 집이 어느 방향으로 열려 있는지 몸으로 알게 된달까. 목구조의 구조 계산은 Timber design이 맡았다. 목재로 곡면 지붕을 띄운 또 다른 사례로는 〈목재 396조각으로 띄운 곡면 지붕, 대만 주택 Our Forest〉도 함께 볼 만하다.

블랙 주방과 와이어 펜던트, 조명은 몇 겹인가
주방은 블록 벽 쪽에 일자로 길게 붙였다. 문짝까지 블랙으로 통일한 주방 가구가 밝은 목재 천장 아래에서 묵직하게 중심을 잡는다. 식탁 위에는 가는 블랙 선이 얽혀 공 모양을 이룬 와이어 펜던트가 걸렸는데, 건축가가 밝힌 제품 목록의 Ligne Roset Bloom 조명으로 보인다. 의자는 Kartell의 Masters다. 그 화이트 곡선이 블랙 주방 앞에서 선명하게 튄다.
조명을 뜯어보면 상부장 아래 매립 조명이 조리대를 비추고, 식탁 위 펜던트가 분위기를 만들고, 보 위에 얹은 작은 스포트 조명이 거든다. 조명은 공간 전체를 채우는 전반 조명, 손이 닿는 곳을 밝히는 작업 조명, 시선을 끄는 연출 조명이 세 겹으로 겹쳐야 깊이가 생긴다. 이 집은 보가 드러난 천장이라 매립 조명을 촘촘히 넣기 어렵고, 사진만 봐서는 전반 조명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목재 천장은 빛을 따뜻하게 되돌려 주는 좋은 반사판이다. 보 윗면에 2700~3000K 웜톤 라인 조명을 숨겨 천장을 간접 조명으로 밝히면, 밤에도 낮의 목재 질감을 살리면서 눈부심 없이 방 전체를 채울 수 있다. 블랙 주방 가구는 빛을 먹는 마감이라 같은 밝기에서도 어둡게 읽힌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하다. 디머 스위치 하나만 달아도 요리할 때와 저녁을 먹을 때의 밝기를 따로 가져갈 수 있다.

보 사이에 끼워 넣은 붙박이, 배의 선실 같은 침실
2층에는 침실 네 개가 계단을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덕분에 모든 방이 정원 쪽 곡면 창을 하나씩 나눠 가진다. 방의 크기와 가구 배치는 노출된 보의 간격이 정했다. 보와 보 사이에 화이트 붙박이 수납장과 책상, 침대를 꼭 맞게 끼워 넣었는데, 설계팀은 그 덕에 방이 배의 선실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선실 같은 방은 작지만 필요한 모든 게 손 닿는 거리에 있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물건마다 제자리가 정해진 방에서는 정리에 드는 신경이 줄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밖 숲으로 향한다. 아쉬운 건 화이트 일색의 붙박이가 목재 천장 아래에서 조금 밋밋하게 떠 보인다는 점이다. 침구나 러그에서 올리브나 테라코타 같은 차분한 색 하나만 받아 줘도 방마다 성격이 생겼을 것이다.

네 개의 방이 나눠 쓰는 곡면 발코니
침실 창을 열고 나서면 하나로 이어진 곡면 발코니가 기다린다. 1층의 처마 역할을 하는 바로 그 보 위에 목재 데크를 깔았고, 난간은 가는 블랙 철제 레일과 메시로 최소한만 둘렀다. 방은 각자 쓰지만 바깥은 함께 쓰는 구조다.
아침에 커피를 들고 나왔다가 옆방 식구와 마주치는 장면이 쉽게 그려진다. 각자의 방과 함께 쓰는 바깥을 문 하나로 나눠 둔 덕에, 혼자 있고 싶을 때와 어울리고 싶을 때를 그날 기분대로 고를 수 있다. 발코니 아래 정원은 건물이 새것인 게 무색할 만큼 이미 무성하게 자라 있다.

물을 두 번 쓰는 집
욕실은 북쪽 블록 벽에 바짝 붙어 있다. 그레이 미장 벽과 블록, 목재 천장의 조합이 거실과 같은 재료 언어를 이어 가고, 보 사이에 길게 매립한 라인 조명이 좁은 욕실을 길쭉하게 늘려 보이게 한다.
이 집의 친환경 설계가 가장 철저한 대목은 물이다. 정원 연못이 빗물을 모아 두는 저수조 역할을 해서 가뭄에도 정원에 줄 물이 남는다. 수생식물의 뿌리로 오수를 거르는 자체 정화 시설도 갖췄다. 덕분에 이 집은 마을 하수관으로 오수를 한 방울도 내보내지 않고, 모든 물을 최소 두 번 쓴다. 공기도 비슷하게 다룬다. 겨울에는 열회수 환기 장치가 빠져나가는 실내 공기의 열로 바깥 공기를 데워 들인다.
건축주 가족은 공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이사를 들어왔다고 한다. 그 뒤로 집과 정원을 함께 가꾸며 살고 있고, 계획대로라면 북쪽 블록 벽도 지금쯤 덩굴에 상당 부분 덮였을 것이다. 해를 향해 열린 이 목조주택이 이제는 정원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