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블루로 끝까지 밀어붙인 브루탈리즘 주택, The Blue House

스페인 테네리페(Tenerife) 북쪽, 라라구나(La Laguna)의 조용한 주택가 라만사니야(La Manzanilla)에 하늘을 한 조각 떼어다 세워 놓은 듯한 브루탈리즘 주택이 있다. 이름부터 숨길 생각이 없다. The Blue House. 이 섬에 사무실을 둔 FIVE OH FIVE가 4인 가족을 위해 설계한 단독주택이다.

브루탈리즘이라고 하면 보통 그레이 콘크리트 덩어리가 먼저 떠오른다. 무겁고, 무뚝뚝하고, 사람보다 구조가 먼저 말을 거는 건축. 이 집은 그 문법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면서 겉옷만 갈아입혔다. 외벽은 스카이블루, 셔터와 차양, 알루미늄 창호까지 전부 블루 계열로 래커 칠을 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색이 거짓말처럼 빠진다. 블록과 콘크리트가 맨얼굴로 서 있다. 밖은 축제, 안은 수도원이랄까.

스카이블루 외벽과 정사각 타일 하단부가 대비되는 The Blue House 정면 외관
© Flavio Dorta

외벽부터 창틀까지, 블루 하나로 끝까지 밀었다

색을 쓰는 집은 많아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은 드물다. 대개 포인트 벽 한 면이나 현관문 하나에서 용기가 멈춘다. The Blue House는 셔터, 문 위 차양, 창호 프레임, 빗물 홈통, 마당의 철제 퍼걸러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블루 계열로 맞췄다. 설계팀은 이 색이 머리 위 하늘을 그대로 비추고, 함께 사는 가족의 활기를 겉으로 드러내는 장치라고 설명한다.

사진을 보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맑은 날엔 외벽 윗선이 하늘과 맞닿으면서 건물의 윤곽이 흐려진다. 반면 아랫단은 그레이 브라운 톤의 작은 정사각 타일로 감쌌고, 타일 사이 줄눈까지 블루로 맞췄다. 입자감 있는 짙은 타일이 아래를 받치니 집이 땅에 묵직하게 앉아 있는 인상을 준다. 위는 가볍게, 아래는 무겁게. 색 하나로 건물의 무게중심을 조절한 셈이다. 외장 색 하나로 집의 성격을 통째로 바꾼 사례로는 레드 대신 블루를 고른 벨기에 겐트의 〈Rinskopf〉도 함께 볼 만하다.

큐브 매스가 맞물린 The Blue House 측면 외관과 블루 철제 퍼걸러
© Flavio Dorta

방 하나에 상자 하나, 큐브를 쌓은 브루탈리즘 주택

매스 구성은 단순한 규칙 하나에서 출발한다. 방 하나가 독립된 상자 하나다. 상자마다 높이가 다르다 보니 외관은 크기가 제각각인 큐브를 맞붙여 놓은 모양이 됐고, 그 들쭉날쭉한 스카이라인이 이 집의 표정을 만든다.

높이 차이는 실내에서 더 의미가 크다. 천장이 높은 방에는 그만큼 큰 창이 들어갔고, 정원 쪽으로는 양쪽으로 활짝 열리는 큰 문을 달았다. 방과 방 사이는 문을 다는 대신 열린 통로로 이어 생활 동선이 끊기지 않는다. 낮은 통로를 지나 천장 높은 방에 들어설 때 몸이 느끼는 압축과 해방, 그 작은 리듬이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된다. 넓이보다 높이의 변화가 집을 더 커 보이게 만든다는 걸 이 브루탈리즘 주택은 잘 알고 있다.

도로에서 본 The Blue House 담장과 블루 대문
© Flavio Dorta

테이데 화산과 아나가 산맥 사이, 테네리페 주택가의 블루

테네리페는 스페인 본토에서 한참 떨어진 대서양 위 카나리아 제도의 섬이다. 집은 뒤편(북동쪽)으로 아나가(Anaga) 산맥을, 남서쪽 파사드로는 섬의 상징인 테이데(Teide) 화산을 바라본다. 큰 창들은 하늘과 테이데, 그리고 라라구나 분지 가장자리의 메사 모타(Mesa Mota) 언덕을 하나씩 액자처럼 잘라 담는다.

정작 길에서 보면 집은 의외로 얌전하다. 낮은 담장 너머로 블루 상자의 윗부분만 살짝 고개를 내밀 뿐이다. 담장 한가운데 끼운 블루 타공 철판 대문이 일종의 예고편 역할을 한다. 문을 밀고 들어가야 비로소 집 전체가 한 번에 쏟아지는 구성이다. 테라코타 기와지붕과 파스텔 톤 이웃집들 사이에서 튀면서도 거슬리지 않는 건, 이 동네 자체가 원래 색에 관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블루 타공 셔터와 퍼걸러가 이어지는 테라스
© Flavio Dorta

셔터와 퍼걸러까지 같은 색, 디테일이 만드는 통일감

창마다 달린 셔터는 금속판을 펀칭한 타공 철판이다. 닫으면 벽이 되고, 열면 차양이 된다. 작은 구멍 사이로 빛과 바람은 통하고 시선은 걸러진다. 볕이 강한 섬에서 이만큼 실용적인 장치도 드물다.

테라스 위로 지나가는 가느다란 철제 퍼걸러도 같은 블루다. 아직 덩굴이 올라가지 않아 선만 남은 모습인데, 오히려 그래서 하늘 위에 펜으로 그은 드로잉처럼 보인다. 여기서 집에 색을 써 보고 싶은 사람에게 쓸 만한 힌트가 하나 나온다. 벽만 칠하고 창틀과 문틀을 화이트나 실버로 두면 색이 중간중간 끊긴다. 프레임과 철물까지 같은 계열로 맞추면 색이 ‘면’이 아니라 ‘덩어리’로 읽힌다.

블루 차양과 타공 셔터, 정사각 타일 하단부가 이어지는 The Blue House 측면 외관
© Flavio Dorta

내력벽과 노출 슬래브, 숨기지 않은 구조

구조는 정직하다. 내력벽 위에 콘크리트 슬래브를 얹고 그 슬래브를 그대로 드러냈다. 문과 창 위에는 공장에서 미리 만든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인방을 걸었다. 바깥에서는 페인트와 타일이 구조를 덮고 있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블록 벽과 콘크리트 슬래브가 그대로 드러나 하중이 어디로 흐르는지 눈으로 따라갈 수 있다. 브루탈리즘의 기본기는 실내 쪽에서 지킨 셈이다.

다만 정직함을 성능과 맞바꾸지는 않았다. 건물 바깥에는 스페인에서 SATE라 부르는 외단열 시스템을 둘러, 슬래브와 벽이 만나는 지점마다 생기기 쉬운 열교를 덮었다. 매끈하게 칠한 외벽 안쪽에서 이 단열층이 제 몫을 하는 셈이다. 콘크리트 덩어리를 쌓아 올린 브루탈리즘의 고전이 궁금하다면 〈몬트리올의 브루탈리즘 Habitat 67〉과 나란히 놓고 보면 반세기 사이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선명해진다.

블루 줄눈의 정사각 타일 외벽에 설치된 둥근 유리 갓 벽등
© Flavio Dorta

둥근 유리 벽등, 밤의 블루를 책임지는 외부 조명

외부 조명은 스페인 조명 브랜드 Faro Barcelona의 제품으로 채웠다. 외벽 곳곳에 붙은 건 둥근 유리 갓을 씌운 Moon 벽등이다. 현관에는 세로로 길게 세운 Scuba 벽등을 달아 진입부를 또렷하게 밝혔고, 테라스 바닥 쪽에는 화이트 매립등 Nat을 심었다. 화이트 등기구가 블루 벽 위에서 작은 점처럼 찍혀 낮에는 그 자체로 장식이 된다.

둥근 오팔 유리 갓은 빛을 한 방향으로 쏘지 않고 사방으로 퍼뜨린다. 눈부심 없이 주변 벽면을 고르게 적시기 때문에, 해가 지면 스카이블루 외벽이 낮과는 다른 깊은 블루로 바뀐다. 사진 속 현관 불빛도 따뜻한 쪽이다. 마당 있는 집이라면 이 집처럼 역할을 나눠 보는 게 좋다. 진입로는 발밑을 확실히 비추는 등, 벽면은 은은하게 퍼지는 벽등, 정원과 테라스는 낮게 깔리는 매립등. 색온도는 2700~3000K 웜톤으로 맞추면 바깥 공간도 거실처럼 머물고 싶어진다.

노출 콘크리트 천장과 블록 벽으로 마감한 거실
© Flavio Dorta

문을 열면 색이 사라진다, 노출 블록의 실내

실내는 밖과 정반대 전략이다. 천장은 노출 콘크리트, 벽은 시멘트 그레이 블록을 쌓은 그대로다. 바닥은 콘크리트를 매끈하게 폴리싱했는데, 낮 동안 열을 머금었다가 천천히 내놓는 축열 역할까지 한다. 블록 줄눈이 격자로 이어지면서 공간 전체에 모듈 같은 리듬이 생긴다.

재료 목록은 짧다. 콘크리트, 목재, 콘크리트 블록. 카나리아 제도에서 오래 써 온 재료를 마감 없이 날것으로 쓴 것이다. 그렇다고 차갑기만 한 건 아니다. 블록 벽 아랫부분을 화이트와 피치 톤으로 칠해 손이 닿는 높이만 살짝 부드럽게 만들었고, 원목 문이 그 위에 온기를 더한다. 밖의 색이 강렬할수록 안의 무채색은 쉼이 된다. 하루 종일 바깥의 블루를 보던 눈이 집 안에서 비로소 쉬는 구조랄까.

레드 아일랜드가 보이는 노출 블록 주방과 거실
© Flavio Dorta

레드 아일랜드 하나가 무채색 거실을 깨운다

그런데 이 그레이 실내 한가운데, 레드가 하나 있다. 거실에서 주방까지 일직선으로 뚫린 축 끝에 놓인 레드 아일랜드다. 색은 전부 밖으로 내보냈다면서 왜 하필 여기에 원색을 넣었을까?

답은 위치에 있다. 무채색 공간에서 단 하나의 원색은 자연스럽게 시선의 중심이 되고, 그 자리가 곧 가족이 모이는 자리라는 신호가 된다. 짙은 무늬가 흐르는 석재 상판이 레드의 채도를 한 톤 눌러 줘서 과하지도 않다. 집 전체를 무채색으로 정리했다면 가장 많이 모이는 가구 하나에만 원색을 주는 방법을 써 볼 만하다. 벽 전체를 칠하는 것보다 실패 부담이 훨씬 적다.

그린 타일로 감싼 삼면 유리 벽난로와 레드 의자
© Flavio Dorta

그린 타일 벽난로, 거실 한가운데 피운 불

거실 중심에는 그린 타일로 감싼 벽난로가 기둥처럼 서 있다. 화실은 세 면이 유리로 열려 있어 거실 어느 쪽에서도 불이 보인다. 타일 사이를 가로지르는 블랙 띠가 무게를 잡고, 그 옆에 놓인 레드 의자 하나가 색의 대화를 이어 간다.

남국의 섬에 웬 벽난로냐 싶지만, 해발이 높은 섬 북쪽은 해변 리조트가 몰린 남쪽보다 한결 서늘하다. 무엇보다 벽난로는 난방 기구이기 이전에 사람을 한곳에 모으는 장치다. 휴대폰 대신 불을 보며 앉아 있는 저녁, 4인 가족의 집에 이만큼 확실한 거실의 구심점은 없다.

원목 계단과 블록 벽이 이어지는 거실
© Flavio Dorta

원목 계단과 둥근 창, 블록 벽에 숨을 틔우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원목 디딤판으로 짰다. 그레이 블록 벽 사이로 나무 결이 지나가니 계단실이 한결 따뜻해진다. 설계팀이 고른 목재 역시 지역에서 구한 것이다.

계단 옆 블록 벽에는 원목 프레임을 끼운 둥근 창이 하나 뚫려 있다. 배의 현창을 닮은 이 창은 직각 일색인 블록 공간에서 유일하게 곡선을 허락받은 요소다. 직선으로만 짜인 방에서 곡선 하나가 주는 긴장 완화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계단을 오르내리다 무심코 들여다보게 되는, 집 안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멍이다.

기하학 패턴 타일 바닥과 피치 톤 벽의 욕실
© Flavio Dorta

욕실만큼은 마음껏, 패턴 타일의 반전

절제된 실내 톤을 깨는 건 욕실이다. 화이트 바탕에 블루, 테라코타, 민트 삼각형이 흩어진 기하학 패턴 타일이 바닥을 덮고, 벽은 피치 톤 정사각 타일로 마감했다. 세면대 하부장은 레드 계열이다. 다른 욕실은 네이비 타일과 테라조 바닥으로 분위기를 완전히 바꿨다.

욕실은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이라 과감한 시도를 해도 부담이 적다. 거실 바닥에 이런 패턴을 깔면 금방 질리지만, 하루 몇 번 들르는 욕실에선 문을 열 때마다 작은 기분 전환이 된다. 집 전체를 차분하게 두고 싶다면 색과 패턴의 실험은 욕실이나 파우더룸에 몰아주는 것도 영리한 방법이다.

기하학 타일로 마감한 2층 테라스와 스카이블루 외벽
© Flavio Dorta

2층 테라스, 하늘과 가장 가까운 자리

욕실의 기하학 타일은 2층 테라스 바닥까지 이어진다. 스카이블루 벽, 블루 창틀, 테라코타와 블루가 섞인 바닥. 외벽에는 블루 철제 발판이 사다리처럼 박혀 있어 그 자체로 그래픽 요소가 된다.

이 테라스에 서면 왜 이 집이 블루여야 했는지가 가장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벽 너머로 보이는 건 오직 하늘이다. 벽과 하늘이 같은 계열의 색이니 경계가 흐려지고, 테라스가 하늘 쪽으로 한 뼘 더 넓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원목 문과 낮은 블록 벽으로 나뉜 실내 라운지
© Flavio Dorta

다운라이트만으로는 아쉬운, 블록 집의 실내 조명

실내 조명은 외부보다 소박하다. 노출 콘크리트 천장에 블랙 원통형 직부등을 일정한 간격으로 달았다. 콘크리트 슬래브에 등을 매립하려면 타설 전에 미리 계획해야 하니, 노출형을 쓴 건 이 집의 정직한 구조와 잘 맞는 선택이다. 욕실에는 화이트 글로브 펜던트를 두세 개씩 낮게 내려 분위기를 바꿨다.

아쉬운 건 거실과 라운지다. 빛이 천장에서 바닥으로만 떨어지는데, 그레이 블록 벽은 빛을 많이 먹는 마감이라 같은 밝기여도 실제보다 어둡게 읽힌다. 조명은 전반, 국부, 연출 세 겹을 겹쳐야 공간에 깊이가 생긴다. 이런 집이라면 블록 벽을 위아래로 스치듯 비추는 월워셔나 업라이트를 더해 줄눈의 질감을 살리고, 라운지 의자 옆엔 플로어 램프 하나, 전구는 2700K 웜톤에 디머까지 달면 좋다. 블록의 거친 표면은 옆에서 빛을 받을 때 가장 아름답다.

밖은 블루로 기분을 띄우고, 안은 무채색으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 사이사이 레드 아일랜드와 그린 벽난로, 패턴 타일이 가족의 하루에 작은 리듬을 넣는다. 브루탈리즘이 꼭 무뚝뚝할 필요는 없다는 것, The Blue House는 그걸 색 하나로 증명한다.

ArchitectsFIVE OH FIVE
PhotosFlavio Dorta
ContractorNAOMAR SLU
Category단독주택
Country스페인
Materials콘크리트 블록, 노출 콘크리트, 목재, 정사각 타일(외벽 하단), 타공 철판
LocationLa Manzanilla, La Laguna, Tenerife
Area280m²
Year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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