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템스강 남안, 굴뚝 네 개가 박힌 적벽돌 덩어리 안에 600석짜리 공연장이 문을 열었다. 석탄을 때던 발전소가 상점가가 되고 사옥이 되더니, 이번에는 무대가 됐다. 9월 28일 Elton John(엘튼 존)의 공연으로 개관한 Apple Music Hall 이야기다.
규모만 보면 작은 방이다. 600석이면 웬만한 소극장 크기다. 그런데 이 방은 폭 11.6m의 무대에 스피커 48개, 방송 카메라 16대 이상을 물릴 수 있는 배선, 무대 뒤 녹음·믹싱 스튜디오 두 개를 달고 있다. 공연을 보여주는 방이라기보다 공연을 제조하는 방에 가깝다.

40년을 비워둔 석탄 발전소, 지금은 동네가 됐다
Battersea Power Station은 1930년대와 1950년대에 걸쳐 두 번에 나눠 지어졌다. 설계는 붉은 전화박스로도 유명한 Sir Giles Gilbert Scott(자일스 길버트 스콧)이 맡았고, 먼저 완성된 Turbine Hall A가 아르데코 장식을 두른 쪽, 전후에 붙인 Turbine Hall B가 훨씬 담백한 쪽이다. 한 지붕 아래 성격이 다른 건물 두 채가 들어앉은 셈이다.
발전은 1983년에 멈췄다. 이후 40년 가까이 지붕도 제대로 없는 채로 비를 맞았고, 그사이 여러 번 재개발 계획이 세워졌다가 무산됐다. 결국 WilkinsonEyre가 설계를, 보존 설계는 Purcell이 맡아 복원을 끝내고 2022년 10월에야 시민에게 문을 열었다.
지금 이 건물은 Grade II*(영국 2등급 상위) 등록문화재다. 굴뚝 네 개는 콘크리트가 삭아 해체한 뒤 원형대로 다시 세웠고, 벽돌은 남길 수 있는 만큼 남겼다. 그 안에 상점과 식당이 들어왔고, 보일러 하우스 여섯 개 층에는 Apple의 유럽 본사가 자리를 잡았다. 인테리어는 Foster + Partners(포스터 앤 파트너스)가 맡았다.
Apple Music Hall은 바로 그 사옥 아래에 생겼다. 회사가 이미 몇 년째 쓰고 있던 건물 안에, 이번에는 바깥 손님을 들이는 방을 하나 더 판 것이다.

이 건물은 세로 홈 하나로 지어졌다
강 쪽 입면을 정면으로 보면 벽이 평평하지 않다. 벽돌을 깊은 기둥과 골로 짜서 벽 전체가 세로로 파인 홈처럼 읽힌다. 굴뚝도 마찬가지다. 매끈한 원통이 아니라 세로 홈을 촘촘히 새긴 콘크리트다.
실내로 들어가도 같은 문법이 나온다. Turbine Hall A의 아르데코 필라스터는 홈이 파인 파이앙스 타일로 감싸여 있다. 100m 가까운 굴뚝부터 손바닥만 한 타일 한 장까지, 한 가지 모티프가 스케일만 바꿔 반복된다.
1930년대라는 시대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스트림라인 모던은 발전소든 극장이든 라디오 캐비닛이든 가리지 않고 같은 어휘를 입혔다. 이 건물에 새 방을 끼워 넣는 설계자가 손댈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실마리도 결국 이 홈이었다.

그 홈을 90도 눕혀 아치로 만든 공연장 인테리어
Apple Music Hall의 객석은 브론즈 포탈 여러 겹으로 조직된다. 모서리를 둥글린 아치 하나하나의 표면에 평행한 홈이 층층이 새겨져 있고, 그 아치가 벽돌벽에서 한 뼘 앞으로 나온 피어 위에 얹힌다. 성당 네이브의 베이처럼 실 길이만큼 반복되면서 뒤로 갈수록 조금씩 작아진다. 무대에서 객석을 보면 아치 속에 아치, 그 속에 또 아치다.
수직으로 서 있던 홈을 옆으로 눕히면 기둥이 아니라 프로시니엄이 된다. 기둥은 힘을 받는 표정이고 아치는 무대를 여는 표정이다. 같은 장식을 90도 돌렸을 뿐인데 발전소의 어휘가 극장의 어휘로 바뀐다.
객석 의자는 벽돌색에 가까운 번트 테라코타로 씌웠다. 조명을 받은 벽돌 앞에 같은 색 덩어리를 놓으니 관객석이 가구가 아니라 벽의 연장처럼 읽힌다. 벽돌 피어 발치에는 업라이터를 심어 같은 색을 위로 밀어 올린다. 어둡게 유지하는 방에서는 색이 낮의 빛이 하던 일을 대신한다.
무대 폭은 11.6m다. 정면을 보는 전통적인 배치로도, 객석이 무대를 둘러싸는 인더라운드로도 바꿀 수 있다. 정원은 600명이다.

브론즈는 Scott이 아니라 복원 공사에서 빌려왔다
발코니를 보면 이 방이 무엇을 참조했는지가 분명해진다. 2층 높이에서 내밀어진 브론즈 박스마다 길쭉한 슬롯이 하나씩 뚫려 있다. 아르데코의 개구부이면서 동시에 캐비닛의 구멍이다.
브론즈라는 선택 자체가 인용이다. WilkinsonEyre가 복원할 때 Turbine Hall A에 남은 파이앙스를 보호하고 테두리를 잡으려고 쓴 재료가 브론즈였다. 새 방은 1930년대의 Scott을 흉내 내는 대신, 이 건물을 다시 쓸 수 있게 만든 2020년대 복원 공사의 언어를 받아 적는다.
제약도 설계에 그대로 남아 있다. 등록문화재라 기존 벽체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 그래서 포탈은 벽돌을 파고들지 않고 그 앞에 서 있고, 발코니는 새로 세운 구조에서 캔틸레버로 나오며, 벽돌은 끝까지 벽돌로 남는다. 옛 벽을 통과하지 않고 그 앞에서 작업한다는 원칙이 접합부마다 눈에 보인다.

로비 벽이 스피커 그릴처럼 생긴 이유
주장이 가장 노골적인 곳은 객석이 아니라 로비다. 한쪽 벽은 리브가 잡힌 브론즈 패널을 위에서 비춰 홈마다 명암이 흐르게 했다. 그 옆은 훨씬 큰 타공 브론즈 벽인데, 구멍이 균일하게 깔리지 않고 불규칙한 덩어리로 뭉쳐 있다. 흡음 패널이나 스피커 그릴에서 보던 무늬다.
그리고 그 구성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리벳이 박힌 검은 철골 브레이스가 지나간다. 발전소의 것이고, 도색도 거의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뒀다.
세 표면이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원래 구조, 소리를 다루는 재료, 그리고 화면. 레드 모듈러 소파와 Jeanneret(잔느레) 스타일 암체어, 레드 러그가 그 앞을 채운다. 안내문 한 줄 없이도 이 건물이 무엇이었고 이 방이 소리에 무슨 짓을 하는지가 읽힌다.

스피커 48개가 건축에서 덜어낸 일
객석을 둘러싸고 스피커 48개가 배치된다. 무대 앞에 스택으로 쌓는 대신 사방에 흩어놓는 방식이다. 무대를 정면형과 인더라운드로 바꿀 수 있다는 조건과 이건 한 덩어리로 묶인다. 소리가 사방에서 오면 객석이 한 방향을 볼 이유가 없어지고, 그래야 단을 옮기고 바닥을 비워둘 수 있다.
더 눈에 띄는 결과는 한쪽 끝의 통유리벽이다. 유리 너머로 발전소의 갤러리와 Scott이 남긴 철골, 옛 창이 그대로 보인다. 공연장 외피가 가장 먼저 요구받는 성능은 차음인데, 유리벽은 그 반대편 끝에 있는 선택지다.
음장을 48개의 개별 음원이 만들어 준다면 실 자체의 음향이 짊어질 몫은 줄어든다. 그때야 투명함이 감당할 수 있는 사치가 된다. 이 유리벽은 이 방에서 전자장비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에 가깝다.
기계가 늘면 건축이 할 일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줄어든 것은 차음과 반사에 쓰던 예산이고, 그 자리에 벽돌과 브론즈와 시선이 들어왔다.

객석이 딸린 녹음실
무대 뒤가 이 프로젝트의 진짜 규모다. 전문가용 녹음·믹싱 스튜디오가 두 개 붙어 있어 공연을 멀티트랙으로 받아 Spatial Audio로 섞는다. 실은 카메라 16대 이상을 물릴 수 있게 배선돼 있고, 전용 방송 컨트롤룸이 따로 있으며, 방송 카메라와 iPhone 촬영을 나란히 돌릴 수 있다. 공연 한 번으로 완성된 음원과 방송용 믹스, 멀티캠 영상이 동시에 나온다.
같은 날 Apple Music Radio의 런던 스튜디오도 문을 열었다. 런던에 있는 진행자와 프로그램이 전부 이 건물에서 생방송된다.
부속실에도 같은 문법이 이어진다. 그린룸은 오크로 패널을 두르고 객석과 같은 번트 테라코타를 앉혔다. 아티스트 사진이 걸린 복도는 브론즈 슬랫 천장 아래 긴 탠 레더 벤치를 두고, 분장실은 리브가 잡힌 유리를 둘러 원통형 플루티드 펜던트 두 개로 밝힌다.
조명 계획도 한 가지 규칙으로 통일돼 있다. 전반 조도를 낮게 깔고, 아치의 조명 띠와 피어 발치의 업라이터가 형태를 그리고, 분장실이나 그린룸처럼 얼굴을 봐야 하는 방에서만 색온도를 올려 국부 조명을 세운다. 600석짜리 방 하나를 꾸민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설계했다는 것이 이 반복에서 드러난다.

발전소에서 쇼핑몰로, 사옥으로, 다시 공연장으로
Turbine Hall B는 지금 에스컬레이터가 오르내리는 상업 공간이다. 석탄을 때던 자리에 상점이 들어섰고, 굴뚝 하나에는 전망용 유리 엘리베이터가 들어갔다. 바깥에는 Foster + Partners의 Battersea Roof Gardens와 Frank Gehry(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308세대 규모의 Prospect Place가 Electric Boulevard를 만들고, 새로 놓인 지하철역이 이 동네를 도심과 잇는다.
건물 한 채를 고친 것이 아니라 동네 하나를 새로 만든 프로젝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용도는 계속 뒤집혔다. 석탄에서 쇼핑으로, 쇼핑에서 사옥으로, 사옥에서 무대로. 산업 유산을 다루는 프로젝트 중에서도 전환의 횟수가 유독 많은 축이다.
물론 이 재생이 모두에게 같은 결과를 준 것은 아니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공공주택 물량이 애초 계획보다 줄었다는 비판이 런던 안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굴뚝이 다시 서고 관광객이 모이는 풍경과, 이 동네에 계속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은 따로 계산해야 한다.
산업 건물을 다시 쓰는 방식이 궁금하다면 앞서 소개한 〈공장 동네에 일본을 들인 런던 호텔, Aethos Shoreditch〉와 〈능선 위 오피스가 되찾은 위엄, 로자 빌딩 리노베이션〉도 함께 볼 만하다.
개관 주간은 Elton John에 이어 Baby Keem으로 이어졌고, 12월까지 출연자 명단이 채워져 있다. 600석이라는 숫자가 작아 보이지만, 이 방에서 만들어진 것은 매번 전 세계로 송출된다. 발전소가 다시 무언가를 내보내기 시작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