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샀다고 해서 그 땅에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옆집과 얼마나 띄워야 하는지, 몇 층까지 올릴 수 있는지, 마당은 얼마나 남겨야 하는지가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설계가 시작되기 전에 이 조건부터 확인하는 것이 건축입니다.

2회는 그 조건을 부르는 영어 용어, 사이트(Site) 이야기입니다. 건축과 1학년 과제의 “대지 분석”이 바로 이 단어들로 채워지고, 건축주에게는 “내 땅에 뭘 얼마나 지을 수 있나”라는 질문의 답이기도 합니다.
먼저 한눈에 정리하면
| 영어 | 한국어 | 한 줄 풀이 |
|---|---|---|
| Site | 사이트 · 대지 | 건물을 짓는 땅, 건축 조건이 걸린 땅 |
| Site Plan | 사이트 플랜 · 배치도 | 땅 위에 건물이 어디에 어떻게 앉는지 보여주는 도면 |
| Setback | 셋백 · 이격거리 | 대지 경계선에서 건물을 물려 지어야 하는 최소 거리 |
| FAR | 에프에이알 · 용적률 | 땅 넓이 대비 건물 바닥면적을 모두 합한 비율(Floor Area Ratio) |
| BCR | 비씨알 · 건폐율 | 땅 넓이 대비 건물이 땅을 덮는 면적 비율(Building Coverage Ratio) |
| Zoning | 조닝 · 용도지역 | 도시를 주거·상업·공업으로 나누고 규칙을 달리하는 제도 |
| Contour | 컨투어 · 등고선 | 같은 높이의 땅을 이은 선. 땅의 경사를 읽는 방법 |
| Topography | 토포그래피 · 지형 | 땅의 높낮이와 생김새 전체 |
| Orientation | 오리엔테이션 · 방위 · 향 | 건물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게 앉히는가 |
| Easement | 이지먼트 · 지역권 | 남의 땅을 지나거나 이용할 수 있게 허락된 권리 |
건축에서 사이트는 그냥 땅이 아니라 ‘지을 자리’입니다. 크기와 모양, 도로와 접한 면, 경사, 주변 건물, 해가 드는 방향까지 전부 사이트의 조건이 됩니다. 같은 도면으로 다른 사이트에 지으면 전혀 다른 집이 되는 이유입니다.
설계 첫 단계가 사이트 분석(Site Analysis)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답사를 나가서 해가 어디서 뜨는지,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이웃집 창이 어디를 향하는지부터 기록합니다.
땅 전체와 건물 지붕 윤곽, 진입로, 마당, 주차, 나무를 한 장에 그린 도면입니다. 지도에 건물을 올려놓은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방 배치를 보여주는 평면도와는 다르게, 건물이 땅에 앉은 위치가 주인공입니다.
건축주가 가장 먼저 확인할 그림이기도 합니다. 남쪽 마당을 넓게 쓸지, 이웃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지가 배치도에서 결정됩니다.
건물을 대지 경계선에 딱 붙여 지을 수 없도록, 경계에서 일정 거리 이상 뒤로 물리는 규칙입니다. 채광, 통풍, 화재 확산 방지, 이웃 사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여백입니다. 도로와 접한 면은 도로 폭에 따라 더 물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지 안에 건축선(Building Line)이라는 선을 정하고 그 선 안쪽에 건물을 앉힙니다. 옆 대지와 붙어 있는 정도가 지역과 용도지역마다 다르니, 땅을 사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대지가 100m²이고 용적률이 200%라면, 각 층 바닥면적을 다 합쳐 200m²까지 지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1층 100m²에 2층 100m²를 올리거나, 1층 70m²에 2층 70m²에 3층 60m²를 올려도 됩니다. 높이를 얼마나 올릴 수 있는지를 사실상 정하는 숫자입니다.
건축주에게는 “이 땅에서 총 몇 평까지 지을 수 있나”의 답입니다. 지하층과 주차장 면적은 산정에서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라 실제로는 계산이 조금 복잡합니다.

건물을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땅을 덮는 면적이 대지의 몇 퍼센트인지를 나타냅니다. 대지 100m²에 건폐율 60%라면 건물 바닥 한 층의 그림자는 60m²까지 허용됩니다. 나머지 40m²는 마당, 주차, 조경 같은 빈 땅으로 남겨야 합니다.
용적률이 얼마나 높이 올리는지라면 건폐율은 얼마나 넓게 까는지를 정합니다. 둘을 한 쌍으로 같이 봐야 합니다. 건폐율이 낮으면 마당이 크고, 용적률이 높으면 층수가 올라갑니다.

도시 계획에서 땅마다 “여기는 주택 지역, 여기는 상업 지역”처럼 용도를 정해 둔 것이 조닝입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용도지역에 따라 건폐율, 용적률, 높이 제한이 전부 달라집니다.
주택을 지을 땅이라면 제1종 전용주거지역, 제2종 일반주거지역처럼 이름과 규제 정도가 다릅니다.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발급받으면 내 땅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도에 물결처럼 그려진 선입니다. 선 하나하나는 해발 몇 미터로 같은 높이의 지점을 이은 것이고, 선 간격이 좁을수록 급경사입니다. 산자락이나 경사지에 집을 지을 때 필수로 보는 도면이 등고선 도면입니다.
평평한 땅이면 필요 없지만, 한국의 주택 부지는 경사지가 많습니다. 등고선을 읽을 수 있으면 물이 어디로 흐르고 어느 쪽이 낮은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등고선이 지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면 토포그래피는 그 지형 자체를 부르는 말입니다. 언덕, 계곡, 완만한 경사, 옹벽이 세워진 축대까지 모두 지형입니다.
“지형을 살려 설계했다”는 말은 땅을 깎고 메우기보다 경사에 맞춰 집을 앉혔다는 뜻입니다. 경사지에서는 땅을 평평하게 만드는 데만 상당한 공사비가 들기도 합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남쪽 하늘을 지나 서쪽으로 집니다. 그래서 거실을 남향으로 하면 겨울 해가 깊숙이 들어오고, 서쪽에 큰 창을 내면 여름 오후에 방이 뜨거워집니다. 오리엔테이션은 이런 해와 바람의 방향에 맞춰 건물을 돌려 앉히는 일입니다.
도면에는 북쪽을 가리키는 화살표(North Arrow)가 늘 표시됩니다. 배치도와 평면도를 볼 때 이 화살표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기면 집이 읽히기 시작합니다.
맹지(도로와 접하지 않은 땅)로 들어가는 좁은 길, 이웃 대지를 통과하는 상하수도관, 전선이 지나는 띠 같은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소유권은 그대로인데 남이 지나갈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입니다.
땅을 살 때 등기부등본과 현장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권리가 걸린 땅에는 그 부분에 건물을 지을 수 없는 경우가 있어서 설계 조건이 훨씬 까다로워집니다.
오늘의 정리
땅을 산 다음에 설계가 아니라, 땅을 사기 전에 사이트 조건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건폐율과 용적률로 지을 수 있는 크기가 정해지고, 셋백과 오리엔테이션으로 건물이 앉을 자리가 정해집니다.
3회는 집을 이루는 뼈대와 부위, 집의 각 부분 이름을 다룹니다.
앞서 소개한 건축과 1학년이 제일 먼저 배우는 영어 도면 용어 10개 — 플랜·섹션·엘리베이션도 함께 보시면 흐름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