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man Foster(노먼 포스터)가 가족과 살려고 직접 고친 남프랑스 별장이 매물로 나왔다. 니스와 모나코 사이, 지중해로 뻗은 캅페라 곶 끝자락에 매달린 절벽 주택 La Voile다. 호가는 2,950만 유로. 런던의 30 St Mary Axe와 베를린 Reichstag 돔을 설계한 건축가가 정작 자기 집에는 무엇을 원했는지, 이 집만큼 솔직하게 보여주는 자료도 드물다.
프랑스어로 ‘돛’이라는 이름 그대로 지붕 위에는 거대한 스틸 아치 두 개가 활처럼 걸려 있고, 그 사이로 캔버스 돛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 집의 진짜 이야기는 화려한 아치보다 그 아래에 있다. 새로 지을 수 없던 1950년대의 낡은 집이 어떻게 일곱 개 층짜리 유리 별장이 됐는가 하는 이야기다.

남프랑스 절벽에 일곱 개 층을 걸었다
집은 비탈을 따라 일곱 개 층으로 계단처럼 내려앉는다. 길에서 들어서는 곳이 가장 높은 층이고, 바다에 가장 가까운 맨 아래층에 침실이 모여 있다. 면적은 480m². 숫자만 보면 캅페라의 대저택들 사이에서 유난히 큰 집은 아니다.
정면 사진을 보면 육중한 석조 벽 위로 유리 띠와 가느다란 스틸 난간이 층층이 얹혀 있고, 양옆으로는 화이트 아치가 소나무 숲 위로 솟는다. 무거운 돌과 가벼운 금속이 한 화면 안에서 부딪친다. 리비에라의 별장 대부분이 테라코타 지붕과 아치 창으로 ‘지중해풍’을 흉내 낼 때, 이 집은 반대로 구조를 감추지 않는 쪽을 골랐다. 하이테크 건축이 별장 스케일로 내려오면 이런 모습이 된다.

니스와 모나코 사이, 캅페라 곶 끝의 비탈
생장캅페라(Saint-Jean-Cap-Ferrat)는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서 지중해로 툭 튀어나온 작은 곶이다. 가파른 비탈마다 별장이 박혀 있고, 바위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한 바퀴 돈다. 남프랑스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별장지다.
La Voile는 곶의 남쪽 끝 가까이, 바위 해안으로 곧장 떨어지는 경사지에 있다. 위 항공 사진의 오른쪽 끝, 숲 사이로 화이트 지붕이 살짝 비치는 집이다. Foster는 1990년대 근처 그라스(Grasse)에 살던 시절 이 땅을 처음 눈여겨봤다고 한다. 그가 손에 넣은 건 땅만이 아니었다. 1950년대에 지어진 뒤 수십 년 동안 이것저것 덧대며 모양이 흐트러진 평범한 조적조 주택 한 채가 함께 따라왔다.

허물 수 없어 벗겨냈다, 리노베이션 별장의 출발점
보통이라면 헐고 새로 지었을 집이다. 그런데 이 일대의 엄격한 건축 규제는 완전한 신축을 허락하지 않았다. Foster는 방향을 틀었다. 수십 년간 붙은 증축부를 걷어내 원래의 조적조 골격만 남기고, 그 뼈대를 발판 삼아 위·아래·양옆 네 방향으로 집을 넓혔다. 초기 스케치에는 ‘Remove unsatisfactory elements(마음에 안 드는 요소는 걷어낼 것)’라는 손글씨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하단 갤러리 참고). 작업은 Foster + Partners(포스터 앤 파트너스)가 맡아 1998년부터 2002년 사이에 진행했고, 현지 건축가 François Alengry가 협력했다.
동선도 뒤집혔다. 대문은 도로와 맞닿은 맨 위층에 있고, 같은 층에 수영장과 주차장, 서비스 공간이 모여 있다. 도로 쪽 벽은 불투명 유리로 막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집 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야 비로소 바다를 향해 아래로 내려가는 ‘거꾸로 된 집’이 시작되는 셈이다. 기존 건물을 지우지 않고 그 위에 새 켜를 얹는 방식은 지금도 이 사무소의 장기다. 〈옛 건물 위 허공에 지었다 — 빌바오 미술관 증축 Agravitas〉도 같은 태도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두 개의 스틸 아치가 돛을 단다
이 집의 얼굴은 역시 아치다. 두 개의 스틸 아치가 맨 위 수영장 뒤편에서 솟아올라 집 전체를 넘고, 아래쪽 테라스까지 내려와 땅에 박힌다. 아치에 매단 캔버스 돛은 여름 햇볕을 가리는 차양이다. 외부 금속 구조 설계는 Waagner Biro가, 구조·설비 엔지니어링은 Arup이 맡았다.
재미있는 건 처음 구상이다. Foster는 돛과 함께 아치에 덩굴 식물을 그물처럼 올려 집 전체를 덮는 ‘그린 베일’을 만들 생각이었다. 덩굴은 겨울에는 잎을 떨궈 햇빛을 들이고, 여름에는 그늘과 바람길을 만든다. 하이테크 건축의 대표 주자가 자기 집 차양만큼은 식물에게 맡기려 했다는 얘기다. 스케치에는 ‘Le voile vert (et la voile)!’라는 메모가 남아 있다. 프랑스어에서 남성형 le voile는 ‘베일’, 여성형 la voile는 ‘돛’이다. 그린 베일, 그리고 돛. 이 집의 이름에는 그 말장난이 겹쳐 있다.

7m 유리벽이 통째로 열리는 거실
집 한가운데의 두 개 층 높이 거실은 바다 쪽으로 기울어진 7m 높이 유리벽 뒤에 있다. 날씨가 좋으면 이 유리면이 미끄러지며 열려 거실이 그대로 테라스가 된다. 움직이는 유리 패널 하나의 무게가 18톤 안팎으로 알려져 있으니, 문이라기보다 기계 장치에 가깝다. 앞서 소개한 〈핸들 돌리면 지붕이 열리는 미국 산장, Sky View〉가 손잡이 하나로 지붕을 열었다면, 이 집은 유리벽 한 면을 통째로 움직인다.
유리 바깥에는 커다란 스틸 브리즈솔레이유(차양 루버)를 덧대 한낮의 직사광을 걸러낸다. 거실 바닥에 사선 그림자가 촘촘히 깔리는 이유다. 지중해 별장에서 통유리는 양날의 칼이다. 전망은 최고지만 여름 오후의 열기와 눈부심은 거실을 금세 온실로 만든다. 이 집은 유리를 포기하는 대신 바깥 차양과 여닫히는 벽으로 그 문제를 풀었다. 거실 가구가 크림과 화이트 일색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앉는 순간 시선은 바다로 빨려 나가고, 가구는 풍경과 경쟁하지 않도록 한발 물러서 있다.

가운데를 비우고 가장자리에 방을 붙였다
평면 원리는 단순하다. 집 가운데에 위아래로 뚫린 큰 보이드를 두고, 쓰임새가 정해진 공간은 모두 그 가장자리에 붙였다. 남쪽에는 엘리베이터가 든 서비스 코어가, 북쪽에는 계단이 있다. 층마다 보이드를 내려다보는 내부 발코니가 달렸고, 허공을 가로지르는 통로가 층과 층을 잇는다. 현재는 이 빈 공간이 네 개 층을 관통하는 아트리움으로 쓰인다.
이런 구성의 장점은 가족이 서로 다른 층에 흩어져 있어도 기척이 통한다는 것이다. 아래층 거실의 웃음소리가 위층 서재까지 올라오고,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이 거실에서 다 보인다. 단점도 같은 데서 나온다. 소리와 냄새, 조명 빛이 집 전체로 퍼진다. 손님이 북적이는 휴가용 별장이라면 축복이지만, 매일 출근하고 재택근무도 하는 집이라면 문을 닫고 들어갈 방이 아쉬울 수 있다.

Richard Long의 진흙 벽화, 그리고 밤의 조명
거실 뒷벽 전체를 덮은 거대한 원형 문양은 영국 대지미술가 Richard Long(리처드 롱)의 MudWork 벽화다. 이 집을 위해 의뢰받아 현장에서 손으로 진흙을 발라 완성했다. 유리와 스틸로 가득한 집에서 가장 원초적인 재료인 흙이 벽 한 면을 통째로 차지한 셈이다. 그 앞에 놓인 화이트 곡선 라운지 체어는 Charles & Ray Eames의 La Chaise로 보인다.
밤 사진을 보면 이 벽화가 조명 계획의 중심이라는 게 드러난다. 조명 엔지니어링은 George Sexton Associates가 맡았다. 사진에서 눈에 띄는 등기구는 거의 없고, 빛은 벽화 쪽에 모여 진흙의 요철을 그림자로 살려낸다. 나머지 공간은 그 벽에서 튕겨 나온 반사광으로 은은하게 밝다. 벽 한 면을 연출 조명(액센트)으로 세우고 그 반사광으로 전반 조명을 대신하는 방식이다.
질감 있는 벽은 정면에서 비추면 납작해지고, 벽을 스치듯 빛을 흘려야(월 그레이징) 요철이 산다. 집에서 응용하려면 거실 한쪽 벽에서 20~30cm 떨어진 천장에 매립 라인 조명이나 레일 스포트를 설치하고, 2700~3000K 웜톤 광원에 디머를 달면 된다. 석재·타일·패브릭 패널처럼 결이 있는 벽이면 효과가 더 크다. 밤에 천장 전반등을 끄고 이 벽 조명만 남겨도 거실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탁 트인 집 안에 숨을 곳, 2층 서재
다이닝 메자닌 뒤편으로 두 개 층 높이의 서재가 있다. 책장이 벽을 따라 위아래로 쌓이고, 유리 난간 너머로 아트리움이 내려다보인다. 이 집에서 드물게 사방이 어느 정도 닫힌 공간이다.
개방감은 이 집의 미덕이지만, 사람은 넓은 곳에서 오래 쉬지 못한다. 등을 기댈 벽이 있고 시야가 적당히 가려진 자리를 본능적으로 찾는다. 환경심리학에서 말하는 ‘조망과 피신(prospect-refuge)’의 피신처다. 책으로 둘러싸인 이 서재는 아늑하면서도 난간 너머로 시선이 열려 있어 두 조건을 동시에 채운다. 거실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집이라면, 한쪽 구석을 책장으로 둘러 작은 코너를 만드는 것만으로 그 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확 늘어난다.

바다를 마주한 원형 식탁과 스테인리스 주방
거실을 내려다보는 메자닌에 다이닝이 있다. 경사 유리벽 바로 앞에 원형 유리 상판 식탁을 두고 둥근 시트의 스틸 프레임 의자를 둘렀다. 식탁이 둥글어서 누구도 바다를 등지고 앉지 않는다. 사소해 보여도 전망 좋은 집의 식탁 형태를 정할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부분이다.
주방은 스테인리스로 통일해 유리·스틸 골조와 같은 언어를 쓴다(하단 갤러리 참고). 재료를 금속·유리·화이트 세 가지로 묶어둔 덕에 실내가 차분하다. 다만 스테인리스와 유리로 마감한 주방은 지문과 물자국이 그대로 드러나 관리가 고되다. 비슷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상판과 백스플래시만 스테인리스로 하고, 도어는 무광 화이트나 헤어라인 마감으로 나누는 편이 현실적이다.

바다 쪽 맨 아래층 침실, 그리고 샹들리에
침실은 바다에 가장 가까운 맨 아래층에 모여 있다. 처음 설계에서는 이 층에 침실 네 개를 두었고, 현재는 침실 다섯 개에 독립된 아파트 한 채와 차고가 딸려 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라 침대에 누우면 소나무 너머 바다가 그대로 들어온다.
눈에 걸리는 건 샹들리에다. 침실에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주방에는 블랙 샹들리에가 달려 있는데, 이 집의 정밀한 스틸 디테일과는 결이 다르다. 언제 누가 단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클래식 조명 하나를 모던한 공간에 섞는 건 흔한 기법이지만, 이 집처럼 구조 자체가 장식인 경우에는 오히려 공간의 메시지를 흐린다. 같은 효과를 원한다면 형태가 단순한 펜던트를 고르고 디머로 밝기를 조절해 분위기를 바꾸는 쪽이 이 집의 언어에 맞는다.

Marimekko CEO가 20년 가까이 지킨 집, 다시 매물로
Foster 가족이 이 집에 머문 기간은 길지 않았다. 완공 몇 년 뒤 가족에게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집을 내놨고, 새 주인은 핀란드 디자인 브랜드 Marimekko의 CEO였던 Kirsti Paakkanen이었다. 그는 20년 가까이 이 집을 소유하다 2021년 세상을 떠났고, 이번 매물은 그의 유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호가는 2,950만 유로다.
항공 사진을 보면 해안 산책로가 집 바로 아래를 지나간다. 그런데도 경사와 울창한 조경 덕에 집은 길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옥상 수영장은 아치 아래에서 바다를 정면으로 내려다보고, 집에서 바다로 바로 내려갈 수도 있다. 디자인 브랜드를 이끈 사람이 20년 가까이 이 집을 지켰다는 사실은 이 집이 건축가의 실험작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살 만한 집이었다는 방증이다.

하이테크 별장을 산다는 것
이 집을 사는 사람은 꽤 까다로운 숙제도 함께 떠안는다. 바닷바람의 염분은 스틸 아치와 케이블, 금속 루버를 꾸준히 갉아먹는다. 18톤짜리 유리 패널을 움직이는 구동 장치, 주기적으로 갈아야 하는 캔버스 돛은 일반 주택에는 없는 유지비 항목이다. 증축이나 대수선도 애초에 신축을 막았던 그 규제의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완공 20여 년이 지난 설비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공개된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 집이 시장에 나오는 일은 드물다. 20세기 말 하이테크 건축을 이끈 건축가가 가장 개인적인 스케일에서 구조와 빛, 풍경을 어떻게 다뤘는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아치 아래 테라스에 앉으면 케이블 너머로 수평선이 길게 걸린다. 30년 가까이 지난 스케치 속 돛이 아직 그 자리에서 바람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