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벽에 그림 한 점 거는 건 쉽다. 그런데 집 자체를 액자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일본 시가현(Shiga)의 갤러리 주택 Framing House는 그 질문에 꽤 대담하게 답한 일본 주택이다. 거리에서 집을 정면으로 뚫고 들어간 통로 끝, 작은 중정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길을 지나는 사람은 그 장면을 전시장에 걸린 그림처럼 마주친다.
설계는 시가현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FORM/Kouichi Kimura Architects가 맡았다. 건축주의 요청은 분명했다. 생활 공간 말고도 갤러리로 쓸 수 있는 공간을 집 안에 따로 달라는 것. 2층 목조주택은 이 요청 하나에서 출발해, 통로와 갤러리, 위층 살림집이 각기 다른 액자 속에 담기는 구조로 완성됐다. 갤러리를 방 하나로 끼워 넣는 대신 집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다시 짠 셈이다.

블랙 상자 한가운데 뚫린 빛의 액자
해가 지면 이 집의 정체가 가장 또렷해진다. 블랙으로 마감한 거대한 상자 아래쪽에 직사각형 구멍 하나가 뚫려 있고, 그 안으로 따뜻한 빛이 차오른다. 통로 맨 끝에는 화이트 벽을 배경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가 서 있어서,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조명을 켠 전시장의 작품 한 점이다. 오른쪽 아래 낮게 뚫린 띠창으로는 1층 갤러리의 불빛이 새어 나온다. 창이 거의 없는 무뚝뚝한 외관인데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건, 열어야 할 곳만 정확히 열었기 때문이다.

주택가 모퉁이에 블랙 갈바륨 매스를 쌓은 일본 주택
집은 주택가 교차로의 모퉁이 땅에 앉아 있다. 두 면이 길에 노출되는 모퉁이 땅은 사생활 지키기가 가장 까다로운 자리다. 기와지붕을 얹은 이웃집들 사이에서 이 집만 각진 블랙 매스로 서 있다. 외벽 대부분은 블랙으로 코팅한 갈바륨 강판이다. 일본 주택에서 흔히 쓰는 가볍고 관리가 쉬운 금속 외장재인데, 세로 골이 촘촘한 판을 통째로 두르니 오히려 조각 같은 덩어리감이 생겼다.
재미있는 건 이 덩어리가 매끈한 박스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벽과 지붕에서 볼륨이 툭툭 튀어나오고 들어간다. 그 요철 하나하나가 안쪽 방들의 생김새를 바깥으로 드러낸 결과다. 실내의 다양한 공간을 벽과 지붕의 돌출로 표현하겠다는 게 설계의 출발점이었으니, 외관만 잘 읽어도 집 안 구성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셈이다.

위층이 내민 차양, 블랙 미장으로 구분한 진입부
집은 길에서 한 발 물러나 앉았고, 그 앞은 밝은 콘크리트 마당으로 비워 뒀다. 진입부 위로는 2층 볼륨이 길 쪽으로 쑥 내밀어 비를 피하는 차양 노릇을 한다. 이 돌출부만 갈바륨이 아니라 블랙 미장으로 마감했다.
같은 블랙이라도 골진 금속판과 미장 면은 빛을 받는 방식이 다르다. 멀리서는 한 덩어리로 보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여기가 입구’라는 신호가 은근히 읽힌다. 차양 밑면은 화이트로 처리해 통로 안의 빛이 반사되면서, 입구 전체가 하나의 프레임처럼 떠오른다.

집을 관통하는 반외부 통로, 중정을 액자에 담다
이 집의 주인공은 방이 아니라 통로다. 거리에서 시작한 통로가 1층을 그대로 관통해 뒤편의 작은 정사각형 중정까지 이어진다. 앞쪽은 길을 향해 열려 있고 위는 덮여 있으니, 실내도 실외도 아닌 반외부 공간이다.
설계팀은 이 통로가 뒤쪽 중정을 프레이밍해 바깥에서 볼 때 원근감을 준다고 설명한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화이트로 미장한 좁은 터널 끝에 나무 한 그루를 세운 구성은, 방 안에서 창틀 너머 정원을 그림처럼 감상하는 일본 사찰의 ‘액자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차이가 있다면 이 집은 그 그림을 집주인만이 아니라 길 가는 사람에게도 보여준다는 점이다. 통로는 동선이자 놀이터이고, 가끔은 작은 야외 전시장도 된다.

벽은 나누고 창은 잇는다, 서로의 기척을 느끼는 집
통로 양쪽 벽에는 큼직한 창이 하나씩 뚫려 있다. 오른쪽 창으로는 갤러리가, 왼쪽 창으로는 살림집 현관홀이 들여다보인다. 공간은 분명히 벽으로 나뉘어 있지만 시선은 막히지 않는다. 설계팀이 밝힌 의도는 가족이 ‘서로의 기척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사진 속 장면이 딱 그렇다. 어른은 창가에 걸터앉아 있고, 아이는 통로 끝 중정에서 블록을 쌓는다. 같은 방에 있지 않아도 서로 어디서 뭘 하는지 안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서 가족끼리 ‘따로 또 같이’ 지낼 거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많은 집의 고민이 됐다. 이 집은 그 거리를 벽이 아니라 창의 크기와 위치로 조절한다.

모르타르 바닥과 화이트 미장, 갤러리 주택의 1층
통로 오른쪽 문을 열면 갤러리다. 바닥은 매끈한 모르타르, 벽은 화이트 플라스터로 마감해 이른바 화이트 큐브 전시장의 문법을 그대로 따랐다. 옆으로 길쭉하게 솟은 볼륨 위쪽에는 큰 창을 내 높은 곳에서 빛을 끌어내린다. 벽에 걸린 작품에 직사광이 바로 꽂히지 않으면서 방 전체가 고르게 밝아지는 방식이다.
사진 속 갤러리는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가족이 작업대를 펼쳐 둔 작업실처럼 쓰이고 있는데, 그게 오히려 이 공간의 장점이다. 전시가 없을 땐 작업실, 손님이 오면 전시장이 된다. 앞서 소개한 〈수로 박스로 지은 일본 게스트하우스, Culvert Guesthouse〉처럼 작품을 두는 공간과 사는 공간을 한 지붕 아래 묶는 시도는 일본 주택에서 낯설지 않다. 용도를 하나로 못 박지 않은 방이 집 안에 하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여유다.

거리를 향한 낮은 띠창, 시선은 거르고 빛은 흘린다
갤러리의 거리 쪽 벽에는 바닥 가까이에 낮고 긴 띠창이 하나 나 있다. 눈높이 창이었다면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텐데, 창을 무릎 아래로 내리니 바깥 자갈 마당과 식물만 보이고 시선은 걸러진다.
밤에는 반대로 이 띠창이 거리에 빛을 흘리는 쇼윈도가 된다. 실내에서는 작업대 옆 암 스탠드와 높은 창의 빛이 서로 다른 높이에서 방을 비춘다. 화이트 벽과 모르타르 바닥이 빛을 부드럽게 받아 주니 조명 기구가 많지 않아도 공간이 휑하지 않다. 외관이 닫혀 있을수록 이렇게 계산된 틈 하나가 집의 인상을 좌우한다.

한 단 올린 목재 바닥이 현관을 정의한다
통로 왼쪽 문은 살림집으로 들어가는 현관홀이다. 폭이 좁은 홀인데, 목재 바닥을 한 단 올려 신발 벗는 자리와 실내를 갈랐다. 일본 주택의 겐칸(玄関) 문법 그대로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도 같은 목재로 짜 맞춰 바닥에서 계단까지 재료가 끊김 없이 이어진다.
계단은 칸막이벽 뒤에 숨겼고, 그 벽 바깥쪽에는 작은 니치를 파서 물건을 올려 둘 수 있게 했다. 현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걸리는 자리에 작은 전시대를 하나 더 만든 셈이다. 홀 한쪽 끝 계단 뒤에는 작은 욕실이, 반대편 끝의 뒤쪽 증축부에는 다용도실이 들어갔다. 다용도실은 중정 뒤에 숨은 테라스로 이어진다.

천창 하나로 밝힌 2층 거실
계단을 오르면 꼭대기의 큰 창이 먼저 반긴다. 2층은 가족의 생활 공간이다. 거실 바닥은 화이트로 마감한 목재라 화이트 플라스터 벽과 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천장에는 양쪽으로 길쭉한 홈을 파고, 한쪽 벽 끝에서 그 홈을 직사각형 천창으로 열었다. 안방 위로 지붕을 한 단 높인 단면과 맞물린 천창이라, 하늘빛이 벽을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창을 크게 낼 수 없는 주택가 모퉁이 집에서 빛을 옆이 아니라 위에서 받는 건 사생활과 채광을 동시에 잡는 정석이다. 삼면이 막힌 땅에서 정면 하나에 유리벽돌을 둘러 빛을 끌어들인 〈Glass Brick House〉가 벽으로 빛을 거른다면, 이 집은 지붕으로 빛을 받는다. 바깥에서 봤을 때 블랙 상자의 윗부분이 들쭉날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르타르 책장 알코브, 재료를 바꿔 영역을 나눴다
거실 한쪽 벽은 깊숙하게 파낸 알코브다. 그 안에 모르타르로 빚은 붙박이 책장을 짜 넣고, 바닥도 같은 모르타르로 한 단 올렸다. 화이트 목재 바닥에서 그레이 모르타르로 재료가 바뀌는 지점이 곧 영역의 경계다. 벽을 세우지 않고도 ‘여기는 책 읽는 자리’라는 구획이 생긴다.
설계팀은 2층의 창과 책장, 수납, 방을 섬세한 색과 최소한의 형태로 하나하나 프레이밍해, 나뉘어 있으면서도 이어진 공간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이 책장이 그 말을 가장 잘 보여준다. 매끈하지 않고 얼룩진 모르타르 질감은 화이트 일색인 거실에 손맛 나는 표정을 하나 얹는다. 집에 적용한다면 콘크리트 질감 도장이나 미장 마감 선반을 화이트 벽 안쪽에 넣는 것만으로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커튼 뒤 간접조명과 유리 펜던트, 조명은 두 겹이면 충분하다
이 집에서 조명이 가장 공들인 자리는 다이닝이다. 계단 뒤 벽 전체를 차지한 붙박이 수납장은 문 대신 바닥까지 떨어지는 긴 화이트 커튼으로 가렸다. 커튼 윗선에는 라인 조명을 숨겨, 따뜻한 웜톤 빛이 주름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주름마다 음영이 생기면서 평평한 수납벽이 부드러운 조명 벽으로 바뀐다. 식탁 위에는 위쪽은 투명하고 아래로 갈수록 뿌옇게 번지는 유리 펜던트를 낮게 내렸고, 거실 쪽에는 천장의 작은 사각 구멍에서 화이트 구형 펜던트가 내려온다.
조명 설계는 보통 전반·국부·연출 세 겹을 겹쳐야 깊이가 생긴다고들 한다. 이 집은 빛을 커튼에 한 번 튕겨 퍼뜨리는 간접조명이 분위기와 전반 조명을, 식탁 펜던트가 국부 조명을 맡는다. 간접조명은 광원이 눈에 직접 보이지 않으니 눈부심이 없고, 벽면 전체가 은은하게 밝아져 좁은 공간도 넓어 보인다.
따라 하기도 어렵지 않다. 커튼박스 안쪽에 2700~3000K LED 바를 매립하면 커튼이 그대로 거대한 조명 갓이 된다. 디머 스위치를 함께 달면 저녁 시간대 밝기를 한 단계 더 낮출 수 있다. 식탁 펜던트는 상판에서 60~75cm 높이로 내리면 눈부심 없이 식탁 위만 또렷하게 밝힐 수 있다.

문 없이 열어 둔 아이방, 커튼 하나로 경계를 흐린다
수납벽의 커튼은 뒤쪽 방까지 길게 이어지는데, 그 끝이 아이방이다. 문을 달지 않고 열어 둔 작은 방으로, 한쪽 벽에는 커다란 곰 그림이 자리 잡았다. 커튼 하나로 복도와 방의 경계를 흐린 덕에 아이는 놀면서도 거실 쪽 기척을 느끼고, 부모도 아이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처음부터 벽으로 못 박지 않았으니 아이가 크면 커튼을 하나 더 치거나 칸막이를 세워 방을 닫으면 된다. 가족의 시간표에 따라 방을 바꿔 쓸 여지가 남는 구성이다. 안방과 주방은 거실 반대편, 1층 갤러리 바로 위에 있다. 안방 문은 화이트 벽 뒤에 숨겼고, 주방은 직사각형 개구부로 드나든다. 문짝 하나까지 벽의 일부처럼 정리해 2층 전체가 한 덩어리의 화이트 공간으로 읽힌다.

프레임 안에서 각자의 영역을 말하는 집
현관홀 창 너머로 갤러리가 보이고, 갤러리 창 너머로는 다시 거리가 보인다. 이 집에서는 어디에 서든 시선이 창 두세 개를 겹쳐 통과한다. 액자 속에 또 액자가 있는 셈이다.
설계팀은 반외부 통로와 갤러리, 생활 공간이 각자의 프레임 안에서 제 영역을 드러내면서도 서로 풍성하게 이어진다고 말한다. 바깥에는 무뚝뚝할 만큼 닫혀 있고 안에서는 한없이 투명한 이 대비가 Framing House의 핵심이다. 블랙 상자로 가족의 사생활을 지키면서도, 정작 길에는 나무 한 그루가 걸린 그림 한 점을 선물한다. 지금 봐도 낡지 않은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