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착륙선을 닮은 산장, 칠레의 철제 나무집

칠레 남부 Araucanía 지역, 활화산 Llaima와 Lonquimay 사이에 자리한 Conguillío 국립공원 언저리. 이 일대는 araucaria, coihue, 참나무숲을 헤치고 다니는 백컨트리 스키어들에게 잘 알려진 장소다. 그 눈 덮인 경사지 위에, 칠레 스튜디오 Max Núñez Arquitectos가 다리로 땅을 딛고 선 철제 주택 한 채를 앉혔다.

이름은 Casa en los Árboles, 번역하면 ‘나무 위의 집’이다. 2023년 완공된 이 110m² 규모의 집을 스튜디오는 “달 착륙선 같다”고 표현했다. 땅을 최대한 적게 건드리면서, 그러나 주변과 섞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도드라지는 하나의 기술적 오브제로 존재하려 한 시도다.

숲을 훼손하지 않도록 기둥으로 들어올린 하부 구조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달 착륙선처럼 다리로 선 집

“이런 환경에 놓이는 집이라면 최대한 가벼운 존재여야 한다”고 스튜디오는 말한다. “주변 식생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땅에 남기는 흔적도 최소한이어야 한다.” 그 결과로 나온 답이 나무를 베지 않고, 땅의 형태도 바꾸지 않는 철제 골격 위에 집을 얹는 방식이었다.

작은 공터에 자리 잡은 이 수직적이고 기계 같은 집은 대각선으로 뻗은 철제 기둥들 위에 놓여 있다. 프리팹으로 제작된 철골 부재 덕분에 소수의 시공팀만으로도 몇 달 안에 조립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연에 섞이지 않겠다는 모순된 태도, 그것이 오히려 이 집의 정체성이 됐다.

3개 층은 각각 다른 구조 시스템으로 지어졌다. 작고 네모난 1층 바닥판은 네 개의 대각선 기둥이 갈라지듯 뻗어 올라가 상부를 떠받치는 구조다. 이 중심축은 반투명 유리로 둘러싸여 있고, 현관과 함께 산악 장비를 보관하는 수납공간이 이 안에 들어간다.

삼각형 창으로 숲을 바라보는 실내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구조가 바깥으로 밀려난 이유

2층은 수평으로 넓게 퍼지며 1층 위로 깊은 처마를 만든다. 이 처마 덕분에 눈이 기초 주변에 쌓이지 않고 흘러내린다. 2층을 둘러싼 격자형 보는 마치 “아래층 대각선 기둥 위에 걸쳐진 다리 같다”고 스튜디오는 설명한다.

이렇게 구조 부재를 평면의 바깥쪽 둘레로 밀어낸 덕분에, 정작 안쪽 공간은 훨씬 자유로워졌다. 침실 세 개와 욕실 두 개가 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컴팩트하게 배치될 수 있었던 것도 이 구조적 선택 덕분이다. 구조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는 쪽을 택한 셈인데, 창밖 숲의 실루엣과 대각선 기둥의 선이 겹쳐 보이는 순간들이 곳곳에서 만들어진다.

실내 곳곳에 뚫린 삼각형 창들은 이 집의 뾰족한 지붕선을 그대로 반복한다. 창틀 안으로 헐벗은 겨울나무와 상록수가 뒤섞인 풍경이 들어차는데, 구조와 자연이 한 프레임 안에서 만나는 방식이 이 집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라고 봐도 좋겠다.

중심축을 지나는 철제 계단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층과 층을 잇는 좁은 계단

세 개 층을 오가는 스틸 계단은 좁고 가파르게 집 중심을 관통한다. 계단참마다 통유리창이 자리해 오르내리는 동안 바깥 숲의 풍경이 계속 시야에 걸린다. 얇은 철판 디딤판과 노출된 볼트, 케이블 난간까지, 이 계단 자체가 작은 구조 전시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맨 아래층 바닥에는 강화유리를 깔아 지면까지 시선이 뚫리게 해뒀다. 발밑으로 콘크리트 기초와 흙바닥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데, 집이 땅에 얼마나 살짝 닿아 있는지를 매 순간 확인시켜주는 장치인 셈이다.

계단실 벽면은 목재로 마감돼 철제 구조와 대비를 이룬다. 차갑고 기계적인 외피 안에 따뜻한 목재 속살을 감춰둔 구성, 이 집이 겉보기와 달리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걸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경사 목재 천장의 침실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지붕선을 그대로 받아들인 침실

침실은 지붕의 경사를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형태다. 벽과 천장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하나의 접힌 면처럼 이어지는데, 그 위를 따뜻한 색의 오크 합판이 감싼다. 낮 동안 창으로 들어온 빛이 이 각진 목재 면을 타고 흐르며 삼각형, 마름모꼴 그림자를 그려낸다.

침대 머리맡 쪽 벽은 완전히 막힌 목재 면인 반면, 발치 쪽은 통유리로 뚫려 숲이 침실 안까지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프라이버시와 개방감을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식이랄까, 좁은 침실 치고는 꽤 영리한 해법이다.

가구는 최소한으로 절제됐다. 흰색 리넨 침구와 벽에 붙은 조명 하나 정도가 전부인데, 공간을 채우기보다는 구조와 빛, 그리고 창밖 풍경이 주인공이 되도록 비워둔 결과로 읽힌다.

스키 장비를 보관하는 1층 공간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스키어를 위한 현관

지면과 가장 가까운 1층은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둘러싸인 작은 방이다. 스키와 폴, 부츠, 고글까지 겨울 장비들이 벽면 가득 걸려 있는 모습에서 이 집의 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백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별장이라는 설명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와닿는다.

반투명한 벽 너머로 대각선 철골 구조가 실루엣으로 비쳐 보이는데, 낮에는 은은한 산란광이 이 좁은 공간을 채운다. 밤이 되면 반대로 내부 조명이 새어나가 집 전체가 은은하게 빛나는 등불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 공간에서 좁은 철제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침실 층으로 연결된다. 스키를 벗고 젖은 옷을 정리한 뒤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는 동선, 산장다운 실용성이 묻어나는 배치다.

아이들이 노는 거실 내부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지상 12m, 뒤틀린 지붕 아래 거실

거실과 주방 같은 사교 공간은 지상에서 12m 높이의 맨 위층에 자리한다. 뾰족한 A자형 지붕 아래 놓인 이 공간은 스튜디오의 표현을 빌리면 “동굴 같은” 볼륨을 갖는다. 종이 랜턴 조명 하나가 천장 중앙에 매달려 이 높은 공간에 온기를 더한다.

지붕 용마루는 정면과 평행하지 않고 대각선으로 살짝 비틀려 배치됐다. 이 사소해 보이는 회전 하나로 공간의 모서리가 열리면서, 숲과 나무를 향한 시선이 훨씬 다채로워졌다고 스튜디오는 설명한다. 사방이 트인 전망대에서 자연과 시간의 흐름을 함께 느끼도록 설계했다는 것이다.

붉은 벨벳 소파와 양털 러그, 그 위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 뾰족한 기하학적 구조 안에서도 이 집이 실제 가족의 생활 공간이라는 걸 보여준다.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금속과 유리의 외피 안에, 예상보다 훨씬 따뜻한 일상이 담겨 있는 셈이다.

주방 아일랜드와 책장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지붕 아래 걸린 주방

주방은 거실과 한 공간에 놓이되, 짙은 색 금속 아일랜드가 그 경계를 은근하게 나눈다. 아일랜드 옆면에는 책이 꽂힌 선반이 붙어 있어 주방이자 서재, 그리고 거실 사이 완충지대 역할까지 겸한다. 목재 수납장과 짙은 스톤 상판이 만나 철골 구조의 차가운 인상과는 또 다른 질감을 더한다.

수납장 일부는 벽에서 살짝 띄워 부유하는 듯한 형태로 짜여 있다. 무거운 철골 구조 위에 올라앉은 집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내부 가구들은 오히려 가벼워 보이도록 세심하게 다뤄졌다.

싱크대 앞 통창 너머로는 사시사철 다른 표정의 숲이 펼쳐진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요리를 하다가도 고개만 들면 산과 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자리, 이 집에서 가장 오래 머물게 되는 자리가 바로 이 주방 앞일지도 모르겠다.

저녁 조명이 켜진 라운지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해 지고 나면 달라지는 표정

해가 지고 나면 이 집은 낮과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종이 랜턴과 스탠드 조명이 하나둘 켜지면서 목재로 마감된 내부가 주황빛으로 물든다. 반면 창밖은 눈 덮인 숲의 푸르스름한 어스름으로 가라앉는데, 그 대비가 꽤 극적이다.

낮 동안 자연광을 위해 존재했던 통유리창들은 밤이 되면 거꾸로 집 안의 빛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창구가 된다. 숲 사이로 멀리서 이 집을 바라보면, 철제 골격 위에 떠 있는 따뜻한 등불 하나처럼 보일 법하다.

붉은 소파에 걸린 담요와 러그, 낮은 스탠드 조명의 배치까지, 저녁의 이 공간은 낮의 미니멀한 인상과는 또 다르게 아늑하다. 같은 공간이 빛의 조건 하나로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걸 새삼 확인시켜준다.

다이닝 공간에서 본 주방
© 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유리 벽 너머의 숲

지붕으로 덮이지 않는 외벽 면은 예외 없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통유리로 처리됐다. 원형 식탁이 놓인 다이닝 공간에서도, 가스레인지 앞에 선 채로도 시선은 항상 숲을 향한다. 실내와 실외를 가르는 건 얇은 유리 한 장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Max Núñez Arquitectos는 이전에도 유리 블록 볼트를 얹은 가벼운 온실 구조를 선보인 바 있다. 반대로 콘크리트로 지은 노인 요양시설이나, 지붕 라인이 해안 지형과 나란히 흐르는 바닷가 주택도 함께 설계해온 스튜디오다. 유리와 금속을 다루는 이번 작업과는 결이 다른 포트폴리오인 셈인데, 그만큼 재료와 프로그램에 따라 전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스튜디오라는 뜻이기도 하다.

구조설계는 Jorge Tobar가, 시공은 Mauricio Urzúa가 맡았다. 담당 건축가 Max Núñez와 함께 Sonoka Nakamura, Fabian Leiva, Stefano Rolla가 협업자로 참여했다.

 

 

ArchitectsMax Núñez Arquitectos
PhotosCristóbal Palma / Estudio Palma
CategoryVacation home
CountryCh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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