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블록 V자 벽으로 바닷바람 가른 칠레 주택, LBS House

공사장 가림벽이나 창고 담에서나 보던 콘크리트 블록으로 바닷가 별장을 짓는다면 어떤 집이 나올까. 칠레 중부 해안의 퉁켄(Tunquén) 절벽 위에 선 칠레 주택 LBS House가 그 답이다.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달려 태평양과 만나는 이 일대는 길다운 길이 드문 외진 땅이고, 건축가들은 바로 그 외로움에서 재료를 골랐다.

설계는 칠레 건축가 Umberto Bonomo와 Felipe Alarcón이 함께 맡았고, 2020년에 완공됐다. 브루탈리즘이라고 하면 거푸집 자국이 선명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 집은 사람이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블록을 한 장씩 쌓아 그 묵직함을 만든다. 거친 바람과 바위 사이에서 콘크리트 블록 주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이 주말주택 한 채가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태평양 해안 절벽 위에 콘크리트 블록 V자 벽을 세운 칠레 주택 LBS House 항공 전경
© Cristóbal Palma

길이 끝나는 곳, 퉁켄 해안 절벽 위의 별장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집이 아니라 땅이다. 관목이 듬성듬성한 비탈, 화강암 바위가 굴러다니는 능선, 그 끝에서 바로 떨어지는 절벽과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이 풍경 한가운데에 그레이 톤 V자 벽 두 장이 뾰족하게 꽂혀 있고, 그 뒤로 낮고 납작한 집이 바다를 향해 몸을 편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언덕을 오르는 오솔길 하나뿐이다. 집은 도로에 등을 돌리고 바다 쪽으로만 얼굴을 낸다. 주말에만 머무는 별장이라는 성격을 생각하면, 도시의 기척을 등 뒤에 두고 수평선만 마주하겠다는 배치는 꽤 정직한 선택인 셈이다.

관목 덮인 언덕 너머 수평으로 놓인 LBS House 원경
© Cristóbal Palma

트럭이 들어오기 힘든 땅, 그래서 콘크리트 블록

외딴 절벽에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건 디자인이 아니라 운반이다. 자재를 실은 차가 몇 번이나 오갈 수 있는지, 장비가 어디까지 들어올 수 있는지가 설계의 범위를 먼저 정한다. Bonomo와 Alarcón이 시멘트 블록을 고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규격이 정해진 모듈이라 실어 나르기 쉽고, 현장에서 손으로 쌓아 올릴 수 있다.

건축가들은 이 블록을 ‘인공의 돌’이라 부르며, 구조이면서 동시에 외관이고, 고립된 현장의 시공 문제와 예산 문제에 대한 경제적 답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모든 걸 블록으로 해결한 건 아니다. 바닥 슬래브와 주요 구조부는 현장에서 타설한 콘크리트로 잡았다. 무게를 받는 뼈대는 콘크리트에, 바람과 시선을 다루는 벽은 블록에 맡긴 분업이다.

국내로 치면 섬이나 산골 현장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레미콘 한 대가 오가는 것 자체가 비용이 되는 곳에서는 ‘무엇으로 지을까’가 곧 ‘무엇을 옮길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 된다.

안개 속에 뱃머리처럼 솟은 LBS House 콘크리트 블록 V자 벽 끝
© Cristóbal Palma

배의 용골처럼 남풍을 가르는 V자 벽

이 집의 얼굴은 예각으로 만나는 블록 벽 두 장이다. 바다 반대편, 언덕 쪽에서 보면 벽 끝이 뱃머리처럼 솟아 있고 안개가 끼는 날엔 정말로 배 한 척이 비탈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건축가들도 이 벽을 ‘남쪽에서 불어오는 거세고 찬 바람을 깨뜨리는 배의 용골’에 빗댄다.

두 벽은 장식이 아니라 기후 장치다. 설계팀은 이 벽을 대지 위에 정확히 배치해 집 안에 늘 고요한 상태를 만들려 했다고 말한다. 바람을 정면으로 받아 버티는 대신 뾰족한 끝으로 갈라 양옆으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앞서 소개한 〈바위섬 끝에 몸을 낮춘 집, Cruit Island House〉가 지붕을 낮춰 바람 밑으로 숨었다면, LBS House는 벽을 세워 바람과 정면으로 맞선다. 같은 거친 해안에서 정반대의 전략이 나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엇갈려 쌓아 구멍을 낸 콘크리트 블록 벽과 그 위에 얹힌 2층 볼륨
© Cristóbal Palma

엇갈려 쌓은 콘크리트 블록, 담장이 숨을 쉰다

가까이 다가가면 벽이 생각보다 성기다. 블록을 한 줄씩 엇갈려 쌓으면서 곳곳을 비워 두어, 벽 전체에 작은 창이 체크무늬처럼 박혀 있다. 이 구멍으로 빛과 바람이 조금씩 새어 들어온다. 꽉 막힌 담보다 구멍 난 담이 뒤편에 바람의 소용돌이를 덜 만든다는 건 방풍벽 설계의 오래된 상식이기도 하다.

재료의 대비도 계산돼 있다. 건축가들은 ‘거석처럼 보이는 화강암 바위가 공업적이고 구멍 많은 중성적인 시멘트 블록과 대비를 이룬다’고 말한다. 자연이 만든 거친 돌 옆에 공장에서 찍어낸 돌을 세워, 둘 다 더 또렷하게 보이게 하는 방식이다.

구멍 뚫린 벽 하면 앞서 소개한 〈구멍 낸 벽돌이 집을 숨 쉬게 한다, Terracotta Breath〉도 떠오른다. 그쪽이 열대의 더위를 빼내려고 벽에 구멍을 냈다면, 이쪽은 바다의 바람을 길들이려고 구멍을 냈다. 같은 수법이 기후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을 한다.

삼각형 중정에서 바라본 LBS House 거실 정면과 떠 있는 2층 볼륨
© Cristóbal Palma

삼각형 중정, 거친 풍경 속 작은 피난처

V자 벽 두 장이 집 뒤편에서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삼각형 중정이 생긴다. 바깥이 끝없이 열린 절벽이라면, 이 중정은 사방이 감싸인 아늑한 방이다. 바닥엔 자갈을 깔고 커다란 바위 하나를 그대로 앉혔다.

중정에 서면 시선이 집을 관통한다. 거실의 전면 유리 너머로 반대편 바다가 그대로 보이고, 그 위로 2층 볼륨이 두 벽 위에 걸터앉아 액자 윗변 노릇을 한다. 엽서 같은 풍경을 위·아래·양옆에서 한 번에 잘라내는 구도다.

환경심리학에는 ‘조망과 은신(prospect-refuge)’이라는 오래된 이론이 있다. 사람은 자신은 숨은 채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자리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집은 그 두 가지를 아예 다른 장소로 나눠 놓았다. 숨는 곳은 중정, 내다보는 곳은 절벽 쪽 테라스다.

V자 블록 벽이 감싼 삼각형 중정과 수영장
© Cristóbal Palma

땅 모양을 따라 뾰족해진 수영장

중정 안쪽에는 삼각형 수영장이 있다. 벽이 만든 모양을 그대로 받아 물도 뾰족해졌다. 크지는 않지만,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굳이 벽 안쪽에 물을 둔 데엔 이유가 있다. 남풍이 몰아치는 날에도 이 안에서는 물가에 앉아 있을 수 있다.

물 주변은 브라운 톤 데크와 자갈, 선인장과 다육식물로 채웠다. 물을 많이 먹지 않는 건조지 식물로 정원을 짠 건 바닷바람과 염분이 강한 땅에서 관리 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집에 작은 마당을 두고 싶은데 시선과 바람이 걱정이라면 이 중정이 힌트가 된다. 사방을 넓게 트는 것보다 두세 면을 막고 한 면만 여는 편이 실제로 더 자주 쓰는 마당이 된다.

전면 유리 너머 태평양 해안선이 걸린 LBS House 거실
© Cristóbal Palma

두 개의 직교 볼륨, 거실은 바다를 액자에 건다

집 본체는 서로 직각으로 만나는 두 볼륨으로 이뤄진다. 평면으로 보면 V자 벽 위에 T자가 얹힌 모양이다. 중정과 맞닿은 가운데에 주방·다이닝·거실을 모았고, 양쪽 끝으로 침실이 갈라진다.

거실 앞뒤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유리다. 커다란 슬라이딩 문을 열면 실내가 중정 쪽으로도, 바다 쪽 테라스로도 그대로 이어진다. 가는 원형 기둥 몇 개가 콘크리트 슬래브를 받치고 있어 수평선이 거의 끊기지 않는다.

이 거실의 주인공은 가구가 아니라 창밖이다. 날이 맑으면 해안선이 멀리 겹겹이 펼쳐지고, 안개가 끼면 바다 대신 화이트 톤 공기가 벽처럼 창을 채운다. 같은 방이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방이 되는 셈이다.

폴리싱 콘크리트 바닥 위 블랙 주방 아일랜드와 바 스툴
© Cristóbal Palma

아일랜드 하나로 끝낸 주방, 폴리싱 콘크리트 바닥

주방은 큼직한 아일랜드 하나로 정리했다. 블랙 상판과 하부장이 길게 뻗다가 끝에서 바 테이블로 이어져, 따로 식탁을 두지 않아도 서너 명이 걸터앉을 수 있다. 금속 스툴 몇 개와 소가죽 러그 한 장이 장식의 거의 전부다.

마감 팔레트는 안팎이 같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 폴리싱 콘크리트 바닥, 짙은 가구. 건축가들은 날것의 재료를 기후와 지진의 힘, 날씨에 그대로 드러냈다며, 이 선택이 구조물에 한 덩어리 같은 묵직한 인상을 준다고 말한다.

다만 이런 마감을 일상 공간에 그대로 옮길 때는 따져 볼 게 있다. 콘크리트와 유리로만 둘러싸인 방은 소리가 울리고, 겨울 아침에는 바닥이 먼저 차갑다. 소가죽 러그 같은 부드러운 재질을 한두 개 더 들이거나 울 러그와 패브릭 소파로 소리를 먹어 줄 면을 만들면, 같은 콘크리트 공간도 훨씬 편해진다. 국내에서 폴리싱 콘크리트 바닥을 고려한다면 바닥 난방과 함께 계획하는 것이 기본이다.

처마 아래 라인 조명이 켜진 반외부 주방과 블록 벽 사이 정원
© Cristóbal Palma

처마 밑 반외부 주방, 조명은 선 하나면 충분할까

주방 바깥에는 지붕이 덮인 반외부 주방이 하나 더 있다. 슬라이딩 문을 모두 열면 실내 주방과 바깥 주방, V자 벽이 감싼 정원이 하나로 이어진다. 바람만 피할 수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밖에서 먹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아는 배치다.

조명은 놀라울 만큼 적다. 실내 아일랜드 위에는 가는 막대형 펜던트 하나가 길게 걸려 있고, 바깥 주방 처마 밑에는 라인 조명이 조리대를 따라 웜톤 빛을 떨어뜨린다. 2층 목재 방도 전구 하나짜리 펜던트가 전부다. 낮에는 사방의 유리창이 조명 역할을 다 하니, 인공 조명에는 해가 진 뒤의 최소한만 맡긴 셈이다.

문제는 밤이다. 짙은 콘크리트와 블랙 가구는 빛을 먹어서, 같은 밝기여도 실제보다 어둡게 읽힌다. 조명은 전반·작업·연출 세 겹을 겹쳐야 공간에 깊이가 생기는데, 이 집은 작업 조명 한 겹에 가깝다. 송판 자국이 남은 콘크리트 천장이나 블록 벽 아래에 벽을 스치듯 비추는 간접 조명을 숨겨 두면 재료의 질감이 밤에도 살아나고, 2700~3000K 웜톤 전구에 디머를 더하면 하나의 밝기로 저녁 내내 버티지 않아도 된다.

난간 없이 안개 속 절벽으로 열린 콘크리트 테라스
© Cristóbal Palma

난간 없는 테라스, 일부러 설계한 아찔함

바다 쪽으로는 테라스가 집 길이만큼 이어지다가 비탈 위로 툭 튀어나온다. 건축가들은 가파른 땅을 이용해 일종의 현기증을 일부러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중정이 숨는 자리라면 이곳은 몸을 내밀어 내다보는 자리다.

사진 속 테라스 끝에는 난간이 보이지 않는다. 안개 낀 날엔 콘크리트 판이 그대로 허공에 닿아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사진으로는 압도적이지만,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가장 먼저 걱정될 장면이기도 하다.

국내 법규로 옮겨오면 그대로 짓기 어려운 디테일이다. 2층 이상 노대 둘레에는 높이 1.2m 이상의 난간을 두도록 하고 있고, 단차가 큰 외부 공간은 추락 방지 설비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안전을 챙기려면 강화유리 난간이나 가는 와이어 난간처럼 시선을 덜 가리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바다 쪽 전면창으로 해안 절벽이 보이는 LBS House 침실
© Cristóbal Palma

침실은 복도 양 끝으로, 그 사이엔 작은 파티오

침실 두 개는 바다와 나란히 놓인 긴 복도의 양 끝에 하나씩 있다. 두 방 사이에는 작은 파티오가 끼어 있어 서로의 기척이 직접 닿지 않는다. 주말에 다른 가족이나 친구를 불러도 각자의 아침을 지킬 수 있는 거리다.

방에 들어서면 침대 발치 너머로 해안 절벽이 통째로 걸린다. 해안선을 가장 잘 보는 자리를 침실에도 넉넉히 내준 셈이다. 눈을 뜨자마자 무엇을 보느냐가 하루의 기분을 정한다는 걸 아는 배치다.

천장은 콘크리트 대신 목재로 덮어 거실보다 한결 부드럽다. 공용 공간은 거칠게, 잠드는 방은 따뜻하게. 재료의 온도를 방의 성격에 맞춰 바꾼 것이다.

목재로 감싼 2층 볼륨 내부의 바 카운터와 펜던트 조명
© Cristóbal Palma

블록 위에 얹은 목재 상자, 2층은 따뜻한 전망대

바깥 계단을 오르면 블록 벽 위에 얹힌 2층 볼륨이 나온다. 안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목재로 감쌌고, 블랙 철제 바 카운터와 스툴 세 개, 벽에 걸린 사슴 머리 장식이 산장 같은 분위기를 낸다. 슬라이딩 유리문을 열면 넓은 옥외 테라스로 이어지고, 옆으로는 작은 발코니가 하나 더 붙어 있다.

아래층이 바다를 마주하는 거실이라면, 이 방은 풍경을 한 번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대다. 그레이 톤 블록과 콘크리트로 가득한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따뜻한 색을 띠는 방이라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건축가들은 블록의 구멍 많고 거친 표면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후와 함께 이 집을 풍경 속으로 끌어들일 거라고 말한다. 건축이 직접 만들 수 없는 마감을 시간과 자연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바닷바람의 염분과 습기가 블록에 백화와 얼룩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은 관리 부담으로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 얼룩마저 완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이 집을 가장 브루탈리즘답게 만든다.

ArchitectsUmberto Bonomo, Felipe Alarcón
PhotosCristóbal Palma
ContractorJuan Bustos
Category주말주택
Country칠레
Materials콘크리트 블록, 현장타설 콘크리트, 폴리싱 콘크리트, 목재
Location퉁켄(Tunquén), 발파라이소
Year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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