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럼틀로 층을 잇는 어린이집, Kinderoase an der TUM

뮌헨 도심, 오래된 석조 건물들이 어깨를 맞댄 거리 끝에 녹슨 쇠빛 상자 하나가 불쑥 솟아 있다. 위로 갈수록 몸집이 불어나는 이 이상한 덩어리의 정체는 어린이집이다. 뮌헨공대(TUM) 캠퍼스 안에 새로 문을 연 보육시설 Kinderoase an der TUM으로, 설계는 Kéré Architecture가 맡았다.

설계자 Diébédo Francis Kéré(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는 부르키나파소 고향 마을에 학교를 지으며 이름을 알린 건축가이고, 2022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그런 그가 유럽에 처음 남긴 영구 건축물이 하필 아이 60명을 위한 어린이집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땅이 좁아 옆으로 펼 수 없으니 위로 쌓았고, 쌓은 층들은 계단이 아니라 미끄럼틀로 이었다. 건축가는 이 건물을 한마디로 “수직 놀이터”라 부른다.

뮌헨 도심 거리 끝에 선 내후성 강판 외피의 어린이집 Kinderoase an der TUM
© Iwan Baan

주차장 자리에 들어선 5층짜리 어린이집

대지는 원래 주차장이었다. 대학 본관 캠퍼스와 학생식당 사이, 차들이 서 있던 좁은 땅에 연면적 1,540m², 5층 규모의 어린이집이 올라섰다. 공사 기간은 2년 조금 넘게 걸렸고 2026년 7월 대학에 넘겨졌다.

건물을 짓고 기증한 사람은 사업가이자 TUM 명예평의원인 Ingeborg Pohl이다. 기증자가 직접 건축주가 돼 Kéré에게 설계를 맡겼고, 목조 전문가인 같은 대학 동료 교수 Hermann Kaufmann의 사무소에 실시설계를 맡겼다. Kéré는 TUM에서 건축설계와 참여를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니, 캠퍼스 안의 동료들이 모여 지은 건물인 셈이다.

운영은 뮌헨 학생지원기관(Studierendenwerk München)이 한다. 대학 교직원의 아이 최대 60명이 이곳에 다닌다.

접힌 루버 파사드가 위로 갈수록 부풀어 오르는 Kinderoase an der TUM 모서리 외관
© Iwan Baan

위로 갈수록 부푸는 매스, 녹슨 강판 루버의 정체

멀리서 보면 이 어린이집은 머리가 무거운 형태다. 1층은 유리로 가볍게 비워 두고, 그 위의 몸통이 바깥으로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다. 좁은 대지에서 위층 면적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한 선택이면서, 거리에서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실루엣을 만든 장치이기도 하다.

외피는 이중이다. 안쪽의 목구조는 바깥면을 검게 처리했고, 그 앞에 내후성 강판(코르텐강) 루버를 비스듬히 접어 매달았다. 루버는 햇빛을 걸러 그늘을 만들고, 밖에서는 안이 은근히 비쳐 보이게 한다. 해가 지고 실내에 불이 들어오면 녹슨 쇠 너머로 따뜻한 빛이 새어 나와, 건물 전체가 거리의 등불처럼 보인다.

내후성 강판은 표면에 얇은 녹을 일부러 입혀 그 녹이 속을 보호하게 만든 철이다. 시간이 갈수록 색이 짙어지니, 이 건물은 아이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 파사드를 가진 셈이다.

뮌헨 박물관 지구 한가운데 들어선 Kinderoase an der TUM 항공 전경
© Iwan Baan

뮌헨 박물관 지구 한복판의 좁은 땅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 땅이 얼마나 빽빽한 곳에 있는지 바로 보인다. 주변은 뮌헨의 박물관 지구로, 신고전주의 미술관과 대학 건물, 오래된 공동주택이 촘촘하게 들어찬 동네다. 어린이집 하나 넣을 마당을 따로 낼 여유가 없는 땅이다.

Kéré의 설명도 간단하다. 캠퍼스는 빽빽하고 대지는 작으니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흔히 어린이집이라고 하면 1~2층짜리 낮은 건물에 넓은 마당을 떠올리지만, 도심 한복판에서는 그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대학 캠퍼스 안에 보육시설을 둔다는 발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증자는 연구와 커리어를 이어가려는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함께 해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밝힌다. 출퇴근길에 아이를 맡기고 점심시간에 잠깐 들여다볼 수 있는 거리, 그 몇 분이 연구자의 경력을 지키는 인프라가 된다. 맞벌이와 경력단절이 늘 화두인 한국 대학과 기업에도 그대로 옮겨 올 만한 질문이다.

아이와 부모가 드나드는 Kinderoase an der TUM 1층 진입부
© Iwan Baan

어린이집의 고향은 독일이다 — 프뢰벨에서 수직 어린이집까지

사실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이라는 말 자체가 독일에서 태어났다. 1837년 교육자 Friedrich Fröbel이 ‘아이들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이 이름을 붙이며 유아교육 기관을 열었다. 아이를 식물처럼 자라게 하는 정원, 그러니까 놀이와 자연이 곧 교육이라는 생각이 그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유치원 건축의 타이폴로지는 수평적이다. 교실이 한 층에 나란히 놓이고, 각 교실이 마당으로 바로 열린다. 아이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일 없이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구조다. 이 어린이집은 그 정원을 세로로 세웠다. 이름이 ‘아이들의 오아시스’인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마당이 없는 도심에서 정원을 층층이 쌓아 올린 버전이라고 할까.

1층에는 로비와 행정 공간이 있고, 그 위로 보육 공간이 연령대별로 한 층씩 배치된다. 가운데와 위층에는 함께 밥을 먹고 노는 공용 공간과 다목적 체육실이 들어간다. 아이들이 쓰는 면적은 모두 합해 약 700m²다. 연령별로 층을 나눈 건 동선을 단순하게 만들면서도, 나이에 따라 다른 놀이 방식과 소음 수준을 자연스럽게 분리하려는 조닝이다.

천창에서 빛이 쏟아지는 옐로우 원형 계단실
© Iwan Baan

건물의 심장은 천창 아래 옐로우 원형 계단

건물 한가운데에는 원형 계단실이 수직으로 뚫려 있다. 꼭대기의 천창에서 떨어진 빛이 옐로우로 칠한 원통 벽을 타고 1층까지 내려온다. 어른들에게는 층을 오가는 동선이고, 아이들에게는 올려다볼 때마다 하늘이 보이는 우물 같은 공간이다.

계단은 1층의 접수·행정 공간과 위층 보육 공간을 이어 주는 척추 역할을 한다. 어느 층에 있든 이 원통을 중심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으니, 아직 공간 감각이 여문 나이가 아닌 아이들에게도 길 찾기가 쉽다.

빛을 건물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Kéré가 오래 써 온 문법이다. 부르키나파소 학교들에서 그는 지붕을 띄우고 틈을 내 빛과 바람을 실내로 들였다. 재료와 기후는 완전히 다르지만, 건물의 중심을 위로 열어 두는 태도는 뮌헨에서도 그대로다.

층과 층을 잇는 원목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는 아이
© Iwan Baan

계단 대신 미끄럼틀로 내려가는 수직 놀이터

이 어린이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미끄럼틀이다. 원목으로 만든 미끄럼틀이 바닥을 뚫고 아래층으로 이어진다. 아래층에 내려가는 일 자체가 놀이가 되는 셈이다. Kéré는 이 건물을 설계하며 “놀이가 이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미끄럼틀 출구는 나팔처럼 넓게 벌어진 원목 곡면으로 마무리돼, 아이가 레드 바닥 위로 부드럽게 굴러 나온다. 모서리 없이 둥글게 깎은 목재는 부딪혀도 덜 아프고, 손으로 만졌을 때 차갑지 않다. 성인 건물이라면 장식에 그칠 곡면이 여기서는 안전 장치다.

수직 놀이터는 거리 쪽 전면에 몰려 있다. 소음이 큰 도로에 면한 대지라, 시끌벅적한 놀이 공간을 앞에 두어 뒤쪽의 조용한 보육실을 지키는 방음 완충대로 쓴 것이다. 가장 시끄러운 공간으로 소음을 막는다는 발상, 조닝 한 수로 두 문제를 푼 셈이다.

블루 수납벽과 원목 천장이 어우러진 어린이집 보육실 인테리어
© Iwan Baan

블루와 원목, 아이 눈높이에서 짠 보육실 인테리어

보육실은 천장부터 벽, 창틀까지 원목이 기본 톤이다. 기초와 남측 비상계단만 빼고 건물 전체를 나무로 지었고, 목구조는 가리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여기에 블루로 칠한 수납벽이나 레드 바닥처럼 선명한 원색을 면 단위로 한두 개씩만 얹었다.

원색을 전체에 뿌리지 않고 한 면에 몰아 쓴 게 요령이다. 흔히 어린이 공간이라고 하면 온갖 색을 다 쓰기 쉬운데, 그러면 산만해지고 아이들도 쉽게 흥분한다. 따뜻한 원목이 바탕을 잡고, 한 가지 원색이 그 방의 성격을 정한다. 집에서 아이 방을 꾸밀 때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가구도 스튜디오가 직접 디자인했다. 낮은 테이블과 의자, 벤치가 아이 키에 맞춰져 있고, 큰 창은 바닥 가까이까지 내려와 아이들이 앉은 채로 거리를 내다볼 수 있다. Kéré는 나무가 손에 닿는 감촉이 좋고, 따뜻하며, 빛을 잘 반사하고, 자연 환기에도 유리한 재료라고 설명한다. 빽빽한 도심에서 나무가 주는 이런 성질이 아이들에게 너그럽고 열린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뮌헨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옥상 놀이터 Himmelswiese
© Iwan Baan

옥상에 올린 하늘 정원, Himmelswiese

맨 위층 옥상에는 ‘하늘의 초원’이라는 뜻의 Himmelswiese가 있다. 일부는 지붕을 덮고 일부는 하늘로 열어 둔 테라스로, 마당이 없는 이 어린이집의 바깥 놀이터다. 난간 너머로 뮌헨 도심의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학 측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뛰고, 바람과 햇볕을 느끼고, 도시를 내다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1층 마당이 하던 일을 꼭대기로 올려보낸 것이다. 원래는 주차장이 차지하던 땅이, 이제 도심 한가운데의 하늘 놀이터가 됐다.

고층 빌딩 중간층을 통째로 정원으로 내준 싱가포르 오피스 CapitaSpring처럼, 땅이 부족한 도시에서 바깥 공간을 공중으로 올리는 방식은 이제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오피스든 어린이집이든 질문은 같다. 땅을 늘릴 수 없다면 하늘을 어떻게 쓸 것인가.

내후성 강판 루버가 매달린 Kinderoase an der TUM 파사드 디테일
© Iwan Baan

부르키나파소의 그늘이 뮌헨의 루버가 되기까지

가까이 다가가 파사드를 보면 가늘게 접힌 강판 루버가 층층이 매달려 있다. 부르키나파소의 Kéré 작업을 아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장면이다. 그는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건물 바깥에 한 겹 더 스크린을 두르고, 그 그늘 속에 사람이 머물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거듭 써 왔다.

뮌헨에서는 그 스크린이 나무 막대 대신 내후성 강판이 되고, 흙벽돌 대신 정밀하게 가공한 목구조가 몸통을 이룬다. 지역 주민이 손으로 함께 짓던 아프리카의 방식이 독일의 엄격한 규제와 첨단 목조 기술 안으로 번역된 결과다. TUM의 목구조 연구진이 구조·방화 설계와 에너지 계획에 직접 참여했다.

그래도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이 건물 역시 쓰는 사람의 몸에서 설계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Kéré는 초기 작업이 학교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가장 어린 아이들을 위해 짓게 됐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의 시선으로 설계했다고 말한다. 산과 바다를 모든 교실에 들인 베이징사범대학 부속 난산학교가 풍경으로 교실을 짰다면, 이 어린이집은 놀이로 건물 전체를 짰다.

ArchitectsKéré Architecture, Hermann Kaufmann + Partner
DesignerJÜHLING & KÖPPEL Landschaftsarchitekten(조경)
PhotosIwan Baan
Category어린이집(보육시설)
Country독일
Materials목재, 내후성 강판
Location뮌헨공대(TUM) 캠퍼스, 뮌헨
Area연면적 1, 540m²
Year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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