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교외의 한 주택은 살림집이면서 사무실이고, 전시장이면서 동네 도서관이다. 창핑구 Xueshan 마을에 들어선 A House in Xueshan Village 이야기다. 350m² 남짓한 이 집은 짓기 전까지 무엇으로 쓸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가 시작됐다.
설계는 베이징의 DL Atelier가 맡았다. Liu Yang과 Cai Zhuoqun이 이끈 이 프로젝트의 건축주는 건축가의 대학 동문이다. 오래 놀려두던 교외 땅을 2022년에야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정작 어떻게 쓸지는 정하지 못한 채 설계팀을 찾아왔다.

세 가지 미래를 한 번에 설계한 베이징 주택
첫 미팅에서 건축주가 내놓은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가끔 부모님이 와서 머무는 두 번째 집으로 쓰거나, 3년 뒤 회사 사무실로 바꾸거나, 그것도 아니면 세를 놓거나.
보통이라면 하나를 고르라고 했을 것이다. DL Atelier는 반대로 갔다. 세 가지 쓰임새가 공간 배치와 어떻게 맞물리는지부터 하나씩 따져보고, 셋 다 받아낼 수 있는 틀을 짜기로 했다.
설계를 진행할수록 팀은 이 집이 1980년대 중국 가정집에 흔하던 조합식 장롱을 닮아간다고 느꼈다. 칸마다 쓰임이 다르고, 필요에 따라 문을 열고 닫으며 바꿔 쓰는 수제 가구 말이다.
그렇게 이 집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함께 벌인 실험이 됐다.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이, 일과 생활이 한 지붕 아래서 어디까지 섞일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실험이다.

차로 30분, 도시와 농촌 사이 마을
Xueshan 마을은 베이징 시내와 농촌이 맞닿는 경계에 있다. 도심 2환로까지 차로 30분이면 닿는다. 베이징 같은 거대 도시에서 이 정도면 꽤 가까운 편이다.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앞으로는 기와지붕과 슬래브 지붕 농가가 빽빽하게 이어진다. 대지는 마을 북동쪽 모서리의 직사각형 땅으로, 북쪽과 서쪽은 마을 길에, 동쪽과 남쪽은 이웃집 담장에 바로 붙어 있다.
땅 주변에는 친척과 이웃들의 집이 모여 있다. 남쪽에는 친척 집 대문이 있어서 주거용 출입구를 일부러 서쪽 마을 길 쪽, 그 대문 가까이에 냈다. 오가기 편하게 하려는 배려다.
도시의 편의와 시골의 싼 집세가 함께 있는 곳. 설계팀은 이 위치가 이 집의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조건이라고 봤다.

장롱처럼 담백하게, 일부러 꾸미지 않은 외관
마을 길에서 보면 이 집은 놀랄 만큼 담백하다. 1층은 코퍼 톤 목재 패널로 짠 커다란 차고문이, 그 위로는 화이트 벽이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고, 맨 위에 다시 코퍼 톤 매스가 얹혀 있다.
과장된 형태를 뺀 건 의도다. 설계팀은 그동안 자기 작업에 자주 드러나던 미감과 개인적인 서사에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뒀다고 말한다. 이 집은 다른 땅에서도 복제해 지을 수 있는 원형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료도 구법도 흔하고 믿을 만한 것만 골랐다. 표준 자재, 경제적인 시공, 단순한 매스. 개성을 줄인 대신 누구나 따라 지을 수 있는 집이 됐다.
그렇다고 밋밋하지는 않다. 따뜻한 코퍼 톤과 화이트 스터코의 대비가 회색빛 농가 사이에서 조용히 존재감을 낸다.

마당이 집을 감싸는 역발상 배치
중국 농가는 보통 건물이 마당을 둘러싸는 구조다. 가운데 마당을 두고 방들이 그 주위를 에워싼다. 이 집은 그 공식을 정반대로 뒤집었다.
건물을 대지 한가운데 모으고, 크기가 제각각인 마당을 사방에 둘렀다. 건축주의 요구는 흔한 방 셋, 거실 둘 구성이었는데 한 가지 조건이 붙었다. 모든 방에서 마당으로 바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건축주다운 주문이었다.
마당이 사방에 있으니 방마다 빛과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이 다르다. 실내를 나중에 다른 용도로 바꿔 쓰기에도 이 배치가 훨씬 유연하다.
결과적으로 어느 방에 있든 한 걸음이면 바깥이다. 용도가 바뀌어도 모든 공간이 마당과 이어진다는 원칙만은 흔들리지 않는다.

계단처럼 물러난 매스, 1.6m 담장
마당이 사방으로 열리면 걱정되는 게 사생활이다. 동쪽과 남쪽이 이웃집 담장에 붙어 있으니 더 그렇다.
설계팀은 두 가지로 풀었다. 먼저 마당 담장을 1.6m까지 높여 이웃집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했다. 그리고 건물을 계단처럼 층마다 뒤로 물려, 2층 침실 앞에 각자의 테라스를 만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구성이 잘 보인다. 이웃 농가의 지붕들 사이에 화이트 담장과 테라스가 층층이 끼어 있고, 그 사이사이로 작은 마당들이 숨어 있다.
담장 높이도 곳곳에서 다르다. 이 차이는 사생활뿐 아니라 바람길까지 조절하는 장치인데, 그 얘기는 뒤에서 다시 하자.

차고문을 열면 마을 길이 집 안으로
건축주는 일 말고도 자동차 정비가 취미다. 그래서 최소 3대를 세울 수 있는 차고가 필요했고, 이 조건이 대지에서 길 쪽 면을 차고로 쓰는 배치를 사실상 정해버렸다.
북쪽 마을 길을 향한 3대 규모 차고에는 커다란 슬라이딩 문을 달았다. 이 문을 활짝 열면 차고가 길과 한 공간이 된다. 사무실처럼 외부 사람을 맞는 용도로 쓸 때 출입구가 되기도 한다.
담장으로 닫혀 있던 시골 골목에 집이 먼저 문을 열어주는 셈이다. 설계팀은 이것을 마을을 향해 건네는 환영의 몸짓이라고 설명한다.
길 쪽 공간은 안쪽 마당과도 두 방향으로 이어진다. 담장 문을 여닫는 방식에 따라 마당은 닫힌 사적 공간이 되기도, 길로 열린 공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작업실
건축주와 그의 아버지는 둘 다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작업실도 필요했다. 설계팀은 이 작업실을 차고와 한데 묶었다.
목공과 3D 프린팅, 빗물 절약 부품의 설계와 제작까지 여기서 한다. 먼지와 소음이 나는 작업을 생활 공간과 떼어두고 바깥과만 통하게 해서, 집 안쪽은 깨끗하게 지킨다.
완공 후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방이 바로 이 작업실이다. 건축주는 여기서 이 집에 들어갈 배수 부품을 직접 만들었고, 아버지는 원목 문패를 손수 깎고 집의 로고까지 디자인했다.
집을 지은 뒤에도 집을 계속 만들어가는 방인 셈이다. 가족의 손때가 가장 먼저 묻은 공간이 차고 옆 작업실이라는 게 이 집답다.

10명이 일하는 2층 사무실
건축주의 본업은 조경 수자원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일이다. 원래 사무실은 2환로 안쪽 도심에 있었지만 동료들이 여러 지역에서 원격으로 일하면서 사무실은 비어 있기 일쑤였다.
교통이 괜찮은 Xueshan 마을을 주 사무실로 쓰면 어떨까. 처음엔 막연한 구상이었지만 설계에는 이 가능성을 처음부터 온전히 반영했다. 실내를 벽으로 쪼개지 않고 흐르는 듯한 개방형 공간으로 짠 이유다.
2층 남동쪽 모서리만 주거용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10명 넘게 일할 수 있는 업무 공간이다. 길 쪽 북측에는 사무실 전용 출입구와 현관 마당, 따로 쓰는 계단과 화장실을 뒀다. 문 하나로 주거와 사무를 나누기도, 잇기도 한다.
1년 넘는 설계와 공사를 거치며 건축주는 결심을 굳혔다. 고객 응대용 작은 사무실 하나만 도심에 남기고, 나머지 업무는 전부 이 집으로 옮겼다.

거실은 전시장이 되고 침실은 동네 도서관이 됐다
1층 공용 공간은 마당과 붙어 있어 안팎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금은 전시 공간으로 쓰지만 언제든 사무실이나 거실로 되돌릴 수 있다.
원래 거실로 계획했던 방은 건축주 회사의 연구와 설계 성과를 보여주는 전시장이 됐다. 집 자체도 전시품이다. 빗물을 모으고 재활용하는 기술을 이 집이 직접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장 재미있는 변화는 1층 침실이다. 이 방은 지금 마을 이웃과 길 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린 작은 동네 도서관이 됐다. 살림집의 방 하나가 마을의 공공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완공 직후 건축주가 시험 삼아 임대 광고를 냈을 때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상가, 사무실, 주거 어떤 용도로든 수요가 있다는 게 확인됐지만 건축주는 결국 직접 운영하는 쪽을 택했다.

흙을 반쯤 덮은 옥상, 빗물 실험장
건축주의 전문 분야가 빗물 관리인 만큼 조경은 설계팀과 건축주가 함께 설계했다. 마당과 담장 발치에는 화단을 두고, 돌 포장은 빗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물이 스며드는 구역과 빠르게 배수되는 구역으로 나눴다.
옥상 절반은 흙으로 덮었다. 실험용 옥상 녹화 구역으로, 흙과 빗물의 관계를 관찰하는 곳이다. 나머지 절반은 목재 데크를 깐 옥상 테라스다.
마당 조경과 옥상 녹화가 하나로 맞물려 빗물을 모으고, 땅에 스미게 하고, 다시 쓰는 과정을 전부 해낸다. 마당과 옥상 정원은 건축주의 식재 연구를 위한 실험장이기도 하다.
코퍼 톤 외벽을 등지고 옥상에 서면 멀리 산자락이 보인다. 마당, 테라스, 옥상까지 층마다 바깥이 있는 집이다.

담장 높이로 바람을 다루는 패시브 설계
이 집은 패시브 방식으로 에너지를 아낀다. 건물 형태와 벽, 바닥, 지붕 단열은 기본이고, 설계팀은 그보다 한 발 더 들어갔다.
문과 창을 여닫을 때 생기는 미세한 환경 변화, 옥상 녹화의 단열 성능, 방마다 다른 창의 모양과 크기, 방향까지 하나하나 따졌다. 1층 공용 공간 천장에는 천창을 뚫어 깊은 곳까지 빛을 떨어뜨렸다.
앞서 말한 담장 높이 차이가 여기서 힘을 쓴다. 높이가 다른 마당 담장들은 여름엔 맞바람이 통하게 돕고, 겨울엔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준다.
전문 기관의 최종 에너지 평가에서도 이 집은 패시브 절감 목표를 대체로 달성한 것으로 나왔다. 화려한 설비 없이 배치와 형태만으로 얻은 결과다.

한 채에서 마을로, 자기개발 주택의 원형
설계팀은 이 집을 도시 외곽 농촌 주택의 원형으로 본다. 한 채짜리 실험을 체계적인 개발로 넓혀 마을에 오래가는 가치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마을 계획에 따르면 동쪽 시 도로가 앞으로 넓어진다. 그러면 이 집의 동쪽 벽이 큰길에 바로 면하게 된다. 그래서 동쪽 입면에는 유리창을 일부러 넓게 내 나중에 가게로 쓸 수 있게 대비했다.
이웃 땅 대부분이 비슷한 꿈을 가진 친척과 이웃의 것이라, 단계적으로 개발하면서 담장을 하나씩 허물면 개별 주택들이 작은 공동체로 자라날 수 있다. 시즈먼에서 창핑북역까지 열차가 개통되면서 역과 마을을 잇는 통근 셔틀, 동네 시장과 카페 바 같은 계획도 함께 진행 중이다.
집 한 채에 살림과 사무실을 겹쳐놓은 사례로는 탄소를 80% 줄인 베트남 주택 G.ao House도 있다. 한 집을 마을처럼 풀어낸 House of Cluster와 나란히 놓고 보면, 이 베이징 주택이 반대로 한 채에서 마을을 키워가려 한다는 점이 더 선명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