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처럼 접어 지은 밴쿠버 단독주택, Fluevog House

밴쿠버 동쪽 Trout Lake에서 몇 집 떨어진 골목, 비슷비슷한 박공지붕 단독주택이 줄지어 선 동네에 유독 눈에 걸리는 집이 한 채 있다. 씨그린 외벽에 삼각형 창이 뚫려 있고, 지붕 한쪽은 동그랗게 도려내져 있고, 현관은 레드 타일로 번쩍인다. 동네 사람들은 이 밴쿠버 단독주택을 ‘Fluevog House’라고 부른다.

이름에는 이유가 있다. 집주인은 캐나다의 괴짜 구두 브랜드 Fluevog를 세운 John Fluevog의 아들 Adrian Fluevog와 아내 Ali다. 정작 부부는 이 집을 ‘Lakeside House’라고 불렀다고 한다. Adrian의 말을 빌리면 밴쿠버에서 성이 Fluevog인 이상 그 이름이 붙어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씨그린 박공지붕과 레드 타일 현관이 보이는 밴쿠버 단독주택 Fluevog House 정면 외관
© Janis Nicolay

박공지붕 동네에 나타난 씨그린 단독주택

부부는 원래 이스트 밴쿠버에 살고 있었다. 근처 빈 땅이 눈에 들어온 건 우연이었고, 시장에 나온 집들은 하나같이 무난하기만 했다. 타협하느니 직접 짓기로 했다.

설계는 밴쿠버의 MA+HG Architects가 맡았다. Marianne Amodio와 Harley Grusko가 이끄는 사무소로, 색과 예상 밖의 기하학을 과감하게 쓰는 것으로 이름이 났고 2025년 Western Living이 뽑은 올해의 건축가에 올랐다. 이 집은 Amodio와 프로젝트 아키텍트 Adrienne Rademaker가 함께 진행했다.

Fluevog 매장을 여러 곳 직접 열어본 Adrian은 공간을 만드는 일에 익숙했다. 그는 이만한 돈을 들인다면 집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Amodio는 첫 만남부터 양쪽의 디자인 언어가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고 기억한다.

그 결과물은 동네의 문법을 버리지 않았다. 박공지붕이라는 기본형은 이웃집과 똑같다. 다만 그 박공을 씨그린으로 칠하고, 거기서 조각을 떼어냈다.

전봇대 너머로 본 Fluevog House 측면, 삼각형 창과 옥상 데크 개구부
© Janis Nicolay

덧붙이지 않고 도려낸 삼각형과 원

정면을 가만히 보면 장식을 붙인 흔적이 없다. 삼각형 창, 네모난 작은 창, 원형 창 모두 순수한 박공 덩어리에서 무언가를 ‘빼낸’ 자리다. MA+HG는 이 방식을 순수한 형태를 깎아낸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형태가 요란한데도 어수선하지 않다. 덧댄 것이 없으니 윤곽선은 끝까지 단순한 집 모양을 유지하고, 구멍들이 그 위에서 리듬을 만든다.

측면으로 돌아가면 지붕 윗부분이 크게 비어 있는 게 보인다. 박공 한쪽을 통째로 파내 꼭대기층 테라스를 만든 것이다. 그 빈자리 안쪽은 옐로우로 칠해져 있어서 멀리서도 집 속이 들여다보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씨그린과 옐로우의 대비는 사진보다 실물이 더 세다고 해야 할까. 회색과 흰색 주택 사이에서 이 집은 늘 눈에 먼저 들어온다.

박공지붕을 원형으로 도려낸 Fluevog House 옐로우 옥상 데크 외관
© Janis Nicolay

지붕을 동그랗게 뚫은 옐로우 옥상 데크

이 집의 가장 유명한 장면은 지붕에 뚫린 커다란 원이다. 박공지붕 경사면을 원형으로 잘라낸 자리에 옐로우 옥상 데크가 숨어 있다.

이 원형 개구부는 처음부터 계획된 게 아니라 설계팀과 건축주가 주고받는 과정에서 나왔다. 원래 있던 원형 창을 지붕 컷아웃 쪽으로 접어 넣는 아이디어가 이렇게 커졌다.

밖에서 보면 지붕에 구멍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액자다. 데크에 서면 둥근 테두리 너머로 이웃집 지붕들과 나무 꼭대기, 날이 맑으면 멀리 산봉우리까지 들어온다.

결국 이 원 하나가 이 집의 인상을 정한다. 동네 사람들이 이 집을 기억하는 방식도 대개 ‘지붕에 동그란 구멍 난 집’일 것이다.

레드 타일로 마감한 Fluevog House 현관과 차양
© Janis Nicolay

구두 스티치처럼 그은 스터코 줄눈

설계팀은 이 집을 Fluevog 구두 한 켤레처럼 다뤘다. 평면 도안을 2D로 그린 뒤 종이를 접듯 3D로 세워보는 방식으로 형태를 잡았다. 구두 가죽 패턴을 재단해 입체로 꿰매는 과정과 똑같다.

그 흔적은 외벽에 그대로 남았다. 스터코 벽에는 갈라짐을 막기 위한 컨트롤 조인트, 즉 줄눈을 넣어야 한다. MA+HG는 이 기능적인 줄눈을 구두의 박음질처럼 외벽을 가로지르게 배치했다.

현관은 레드 타일로 감쌌다. 씨그린 벽 앞에 튀어나온 레드 박스는 신발로 치면 포인트 컬러를 넣은 힐이나 끈 같은 역할이다.

알록달록한 스터코와 목공 마감의 색은 빠듯한 예산 안에서 골랐다. 비싼 재료를 쓴 게 아니라 같은 재료의 색을 영리하게 배치해 효과를 최대로 끌어낸 셈이다.

라운드 코너 스카이블루 수납장과 레드 현관문이 이어진 주방
© Janis Nicolay

문을 열면 블루, 그다음은 스카이블루

현관을 들어서면 블루 톤의 현관 공간이 먼저 맞는다. 바깥의 레드가 안에서 블루로 뒤집히는 순간이다.

현관 옆으로 주방이 바로 이어진다. 스카이블루 수납장은 모서리를 둥글게 말아 벽처럼 서 있고, 그 끝에 레드 현관문이 보인다. 차가운 색과 뜨거운 색이 한 프레임에 같이 걸리는데 이상하게 부딪히지 않는다.

Rademaker는 이 집을 두고 장난스러움이 진지함의 부족을 뜻한다는 건 오해라고 말한다. 기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깊이 고민한 집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색이 가득한데도 동선은 단순하다. 현관에서 주방, 거실, 뒷마당까지 한 줄로 흘러간다.

Fluevog 패턴 커스텀 벽지로 감싼 파우더룸과 원형 거울
© Janis Nicolay

신발 속으로 들어가는 파우더룸

1층에서 가장 과감한 방은 파우더룸이다. 벽 전체를 Fluevog 패턴으로 제작한 커스텀 벽지로 감쌌다. 퍼플과 마젠타, 블루와 옐로우 꽃무늬가 사방에서 쏟아진다.

Rademaker는 이 방에 들어가는 느낌을 신발 속에 발을 넣는 것 같다고 농담한다. 그것도 아주 펑키한 신발이라고.

파우더룸은 손님이 가장 먼저, 가장 오래 혼자 머무는 공간이다. 그래서 집의 성격을 가장 과감하게 보여줘도 되는 곳이기도 하다. 좁은 방 하나를 브랜드에 바치는 오마주로 쓴 선택이 영리하다.

원형 거울과 코퍼 톤 세면대가 요란한 벽지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다. 이 집 곳곳에 반복되는 원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길게 이어진 창 백스플래시와 아일랜드가 있는 Fluevog House 주방
© Janis Nicolay

창으로 만든 주방 백스플래시

주방은 세로 홈을 판 플루티드 목공 수납장으로 짰다. 평평한 문짝보다 빛을 받을 때 그림자가 결을 만들어 같은 스카이블루도 훨씬 풍부하게 보인다.

싱크대 위 백스플래시 자리에는 타일 대신 가로로 긴 창을 냈다. 설거지하면서 바깥 초록을 볼 수 있고 조리대에 햇빛이 곧장 떨어진다.

창 높이도 계산했다. 조리대 바로 위에서 시작해 낮고 길게 뻗는 창이라 거리 쪽 시선은 막고 빛만 들인다. 채광과 사생활을 한 번에 해결한 셈이다.

아일랜드는 화이트로 비워뒀다. 수납장과 현관문에 색을 몰아준 대신 가운데는 쉬어가게 했다.

옐로우 계단 아래 그레이 소파와 장작 난로가 놓인 거실
© Janis Nicolay

지하실 대신 마당과 바로 이어진 거실

거실은 뒷마당 쪽으로 큰 문을 열어두고 가족 생활의 중심 역할을 한다. 계단 하나 없이 거실에서 곧장 마당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

여기에는 땅의 사정이 숨어 있다. Trout Lake 주변은 이탄층, 즉 물을 머금은 무른 땅이라 지하실을 파기 어려웠다. 그래서 마이크로파일을 박아 집을 받치고 지하 없이 바닥 슬래브를 땅 위에 바로 앉혔다.

제약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 밴쿠버 주택은 보통 반지하를 두는데 그걸 포기하니 1층이 마당과 같은 높이가 됐다. 면적을 늘리지 않고도 집이 훨씬 넓게 느껴지는 이유다.

Adrian은 이제 쉬려고 집을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평온하고, 집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원목 계단과 옐로우 난간벽이 이어지는 Fluevog House 계단실
© Janis Nicolay

아침 빛이 떨어지는 옐로우 계단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원목 디딤판에 옐로우 난간벽을 붙였다. 난간벽에도 작은 원형 창을 뚫어 거실과 시선이 오간다.

이 계단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거리에서 창 너머로 보이는 옐로우 계단이 이 집을 랜드마크로 만든 요소 중 하나다.

입주한 지 1년 반이 넘은 부부는 집이 가족의 생활 리듬까지 바꿨다고 말한다. Adrian은 아침에 계단에 빛이 떨어지는 모습조차 원래 그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고 표현한다.

옐로우는 이 집에서 동선을 안내하는 색이다. 계단, 옥상 데크, 서재 문틀까지 위로 올라가는 길마다 옐로우가 따라붙는다.

옐로우 암체어와 붙박이 책장이 있는 2층 서재 겸 가족실
© Janis Nicolay

삼각형 고측창 아래 서재 겸 가족실

2층은 한 가지 용도로 못 박지 않았다. 서재와 가족실이 함께 있고, 손님이 오면 쓰는 게스트룸은 수납벽 뒤에 숨겨뒀다.

이 층에는 층마다 하나씩 둔 ‘순간’이 있는데, 2층의 순간은 삼각형 고측창이다. 박공 모양을 따라 비스듬히 뚫린 창에서 빛이 쏟아진다.

책장은 스카이블루로 짜 넣고 가구는 옐로우 암체어 하나로 포인트를 줬다. 컬러풀한 집이지만 방마다 주인공 색은 한두 개로 절제했다.

벽과 바닥 타일도 방마다 패턴을 바꿔 깔았다. 같은 재료를 반복하지 않고 공간이 바뀔 때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방식이다.

삼각형 창과 옐로우 프레임 문으로 옥상 데크에 연결된 서재
© Janis Nicolay

부부만의 꼭대기층

꼭대기층은 Adrian과 Ali 두 사람만의 공간이다. 박공 모양 그대로 천장을 높이 올린 볼트 천장 아래 침실과 욕실, 서재를 놓았다.

서재는 옐로우 프레임 문을 통해 옥상 데크로 바로 이어진다. 삼각형 창이 방 한쪽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어 책상에 앉으면 바깥 나무가 눈높이에 걸린다.

복도 같은 이동 공간에는 고측창을 둘러 자연광을 끌어들였다. 욕실은 천창 아래 욕조를 두고 샤워 공간을 지나가며 쓰게 짰다.

침실 창도 박공선을 따라 세로로 길게 냈다. 방마다 삼각형과 원형 개구부가 실내의 장면과 먼 풍경을 동시에 액자에 담는다.

원형 개구부 너머 동네 지붕을 바라보는 블루 클로풋 욕조가 놓인 옥상 데크
© Janis Nicolay

지붕 구멍 앞 블루 클로풋 욕조

옥상 데크 끝에는 블루 클로풋 욕조 하나가 놓여 있다. 욕조는 지붕에 뚫린 원형 개구부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욕조에 몸을 담그면 동그란 테두리 안으로 박공지붕들이 줄지은 동네와 나무 꼭대기, 산의 윤곽이 들어온다. 서쪽을 향하고 있어 해 질 녘이면 노을까지 같이 담긴다.

하늘로 뚫려 있으면서도 곡선 지붕 테두리가 시선을 한 번 감싸준다. 이웃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혼자인 느낌이 드는 이유다.

옐로우 데크 벽, 블루 욕조, 씨그린 외벽. 이 집의 색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도 여기다.

뒷마당 쪽 Fluevog House 후면 외관, 옐로우 차양과 큰 창
© Janis Nicolay

넷제로 제로에너지주택, 형태가 태양을 따랐다

화려한 색에 가려지기 쉽지만 이 집은 넷제로 건물이다. 1년 동안 쓰는 에너지만큼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설계 초기부터 성능 기준을 박아 넣었다.

박공지붕이 한쪽으로 어긋나 있는 것도 멋 때문만이 아니다. 지붕 위 태양광 패널이 최대 효율을 내도록 박공의 각도와 방향을 맞추다 보니 비대칭 형태가 나왔다.

매스는 콤팩트하게 뭉쳤다. 기밀층을 끊김 없이 두르고 단열도 일관되게 이어가기 쉬운 형태다. 전기만 쓰는 올전기 주택이고 고성능 창호로 열 손실을 줄였다.

시공은 Rain City Homes의 Jonathan Pulice가 맡았는데 그는 이 집에서 불과 반 블록 떨어진 곳에 산다. 매일 현장에 나와 골조와 마감을 직접 손으로 했고 예산에 맞는 기발한 해법도 여럿 냈다. Rademaker의 조언은 간단하다. 색을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히게 두라는 것이다. 이 집을 보면 수녀 모자처럼 지붕을 씌운 캐나다 퀘벡 별장 La Cornette나 레드 대신 블루를 고른 Rinskopf도 함께 떠오른다.

ArchitectsMA+HG Architects
PhotosJanis Nicolay
ContractorRain City Homes
Category단독주택
Country캐나다
Materials스터코, 레드 타일, 플루티드 목공 수납장
LocationEast Vancouver, 밴쿠버
Area약 260m²(2, 795 sq 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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