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돌벽 안에 파란 방을 밀어 넣었다, 블루룸 스튜디오

몰타의 옛 항구도시 봄라(Bormla)에는 16세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카레자(karrejja) 연립주택들이 있다. 좁고 긴 골목을 따라 늘어선 이 돌집들은 두꺼운 벽과 낮은 층고로 오랫동안 주거의 역할을 해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방치되거나 반쪽짜리 리모델링으로 원형을 잃은 곳이 많다. 스튜디오 니체(studio NiCHE)가 맡은 이 프로젝트는 그런 건물 한 채를 28제곱미터 남짓한 스튜디오 아파트로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테라스 10제곱미터를 더해도 40제곱미터가 채 안 되는 크기다. 건축가 마르티나 페네크 아다미(Martina Fenech Adami)가 세운 원칙은 단순했다. 있는 것을 최대한 살리고, 새로 들이는 것은 최소화한다는 것. 기존 돌벽과 목재 창틀을 그대로 남겨 철거와 자재 폐기를 줄였고, 그 위에 색과 가구로 완전히 다른 공기를 입혔다. 결과물은 역사적 뼈대 위에 팝아트 감각을 얹은,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설득력 있는 집이다.
창가에 놓인 빨강 흰색 줄무늬 데이베드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여성

하늘색 벽과 빨간 줄무늬, 색으로 온도를 나눈 집

28제곱미터짜리 원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면적이 아니라 색이다. 벽과 붙박이 가구 대부분은 하늘색과 라임스톤 베이지 두 톤으로 정리했는데, 이는 몰타의 거리 풍경에서 흔히 보이는 색이라고 한다. 여기에 커스텀 제작한 가구들에만 새빨간 색을 집중적으로 썼다. 줄무늬 데이베드, 아치형 문, 몇몇 프레임까지 빨간색이 닿는 자리는 정해진 듯 정확하다. 차분한 배경과 튀는 포인트를 분리해두니 좁은 공간인데도 산만하다는 인상이 없다. 창가에 걸터앉아 있으면 마치 색이 온도를 나누는 것처럼, 앉은 자리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샤워실의 붉은 아치문에서 파노라마 창까지 이어지는 시선축 위에 앉은 여성

샤워실 문에서 창밖 풍경까지, 시선이 관통하는 축

이 집의 평면은 두 개의 시선축을 기준으로 짜여 있다. 하나는 실내와 테라스를 잇는 축이고, 다른 하나는 샤워실에서 시작해 파노라마로 트인 창밖 도심 풍경까지 뻗어나가는 축이다. 사진 속 벤치에 앉으면 등 뒤로 붉은 아치형 문이, 정면으로는 봄라 시가지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데, 이 구도가 우연이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의도된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28제곱미터에 불과하지만 시선이 끊기지 않고 끝까지 흘러가기 때문에 실제 면적보다 훨씬 넓게 느껴진다. 작은 집일수록 벽을 늘리기보다 시선을 늘리는 게 효과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거울 소재 백스플래시와 하늘색 패널로 마감된 각진 부엌 유닛

대각선 바닥과 만나는 각진 부엌

부엌은 이 집에서 가장 조각적인 오브제에 가깝다. 벽에 딱 붙이는 대신 공간 가운데로 비스듬히 밀어 넣어 각진 매스를 만들었고, 바닥 타일도 이 각도에 맞춰 대각선으로 깔았다. 덕분에 동선이 부엌을 정면으로 가로지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휘어진다. 상판 안쪽으로는 거울 소재 백스플래시를 넣어 조리대 위 공간을 시각적으로 두 배로 부풀렸다. 손잡이 하나까지 목재로 맞춤 제작한 걸 보면, 기성 부엌 유닛으로는 이 각도와 비례를 절대 맞출 수 없었겠다 싶다.
거울에 반사되어 두 배로 넓어 보이는 줄무늬 데이베드와 계단식 단

거울 뒤에 숨겨둔 수납, 구석까지 쓰는 밀도

좁은 집의 흔한 함정은 수납을 포기하거나, 수납장을 앞세워 공간을 더 좁아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집은 둘 다 피해간다. 큰 거울을 세워 라운지 니치의 깊이를 눈으로 두 배 늘리는 동시에, 계단식으로 단을 높인 구조 안쪽에 자잘한 수납을 모두 숨겼다. 앉는 자리, 밟고 오르는 계단, 물건을 넣어두는 공간이 한 덩어리로 겹쳐 있는 셈이다. 이렇게 층을 쌓아 올리는 방식은 자칫 답답해 보일 수 있는데, 거울과 밝은 배색이 그 무게감을 상쇄해준다. 흔히 놓치기 쉬운 구석 공간까지 알뜰하게 살려낸 디테일이 돋보인다.
노란색 목재 셔터 창문과 붙박이 옷장 앞에서 침대 위로 뛰어오르는 아이

옷장 속으로 스며든 침대

침실이라고 부를 만한 별도의 방은 없다. 대신 하늘색 붙박이장 한 세트가 침대와 옷장, 수납을 한 덩어리로 묶어낸다. 매트리스는 캐비닛 볼륨 안으로 파고들듯 자리 잡고, 그 옆으로 행거와 선반이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옷방 역할까지 겸한다. 원목 셔터가 달린 노란 창문은 이 구역에서 유일하게 톤을 달리한 요소인데, 하늘색 벽과 대비되면서도 튀지 않고 스며든다. 프라이버시가 필요할 땐 짙은 남색 커튼을 드리우는 것만으로 침실과 거실의 경계가 만들어진다. 벽을 세우지 않고도 영역을 구분하는 가장 경제적인 해법이다.
붉은 모자이크 타일과 곡선 거울, 목재 소품 선반이 있는 세면대

곡선 거울과 모자이크가 만드는 여유

세면 공간은 면적으로 치면 이 집에서 가장 작은 축에 속하지만, 표정은 가장 화려하다. 붉은 유리 모자이크를 벽 하단에 두르고, 그 위로 물결치는 곡선의 커스텀 거울을 매달았다. 각진 가구가 많은 집 안에서 이 곡선 거울 하나가 리듬을 깨주는 역할을 한다. 좁은 세면대 앞이라도 거울 면적을 넉넉히 확보하니 답답함이 훨씬 덜하고, 작은 원목 선반에 올려둔 화분과 소품들이 공간에 생활감을 더한다. 기능적으로는 최소한이지만 표정만큼은 인색하지 않게 설계한 구간이다.
붉은 유리 모자이크로 감싼 샤워실과 변기, 아치형 붉은 문

반사가 빛과 부피감을 대신하는 욕실

창이 거의 없는 좁은 욕실에서 조명과 마감재만으로 부피감을 만들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집은 그 답을 반사 소재에서 찾았다. 샤워부스와 벽면을 붉은 유리 모자이크로 통째로 감싸 빛이 타일 표면에서 계속 튕기게 만들었고, 유리 파티션이 그 반사를 한 번 더 확산시킨다. 아치형으로 마감한 붉은 문은 옆 공간의 직선적인 가구들과 대비되며 이 구역만의 독립적인 존재감을 만든다. 색과 재질을 과감하게 쓰면서도 동선은 최소한으로 압축한, 실용과 스타일 사이의 균형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16세기 몰타 석조 건물과 화단, 실내 라운지가 비치는 창

울타리 대신 화단을 놓은 테라스

10제곱미터 남짓한 테라스는 실내 못지않게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일반적인 난간이나 펜스 대신 커스텀 제작한 화단을 경계선에 둘러,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시야를 가리지 않게 처리했다. 화단 안의 식물들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옆 건물과의 경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줄 것이다. 창 너머로는 수백 년 된 몰타 석조 건물이 그대로 보이는데, 실내의 강렬한 색채와 대비되며 오히려 이 집이 얼마나 오래된 동네 안에 놓여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외부에서 보면 이 집은 이웃 건물들과 조용히 어울리고, 안으로 들어서야 비로소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구조다. 이 집은 작다는 제약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설계 언어로 바꿔냈다. 시선축, 거울, 각진 가구, 색 분리 같은 장치들이 하나같이 28제곱미터라는 조건 없이는 나올 수 없었을 결정들이다. 오래된 돌집과 팝아트풍 인테리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를 굳이 부딪혀보게 만든 배짱도 눈에 띈다.  
Architectsstudio NiCHE (Martina Fenech Adami)
PhotosRamon Portelli
CategorySTudio
Country몰타 봄라(Borm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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