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하나가 집을 두 배로 넓혔다, 왕 아파트

대만 신베이시에 자리한 왕 아파트는 전용면적 33제곱미터, 그러니까 10평 남짓한 작은 집이다. 그런데 이 집을 설계한 2BOOKS 디자인은 좁다는 사실보다 훨씬 흥미로운 조건 하나를 먼저 발견했다. 바닥이 처음부터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같은 집인데 구역마다 층고가 다르게 형성돼 있었다는 이야기다.

보통이라면 이 불균질한 바닥 레벨은 골칫거리로 취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설계팀은 이걸 없애야 할 결점이 아니라 공간을 조직하는 핵심 도구로 삼기로 했다. 그 판단 하나로 33제곱미터짜리 집은 평면이 아니라 단면으로 설계되는 집이 됐다.

거실 코너의 전신 거울과 소파, 안쪽 침실로 이어지는 동선

낮은 천장 아래, 오히려 편안한 거실

낮은 층고 구간에는 거실을 앉혔다. 얼핏 들으면 답답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낮은 천장은 소파에 앉았을 때 사람을 감싸는 듯한 아늑함을 만들어주고, 벽에 걸린 TV와 붙박이 수납장은 군더더기 없이 정리돼 시선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소파 옆으로는 전신 거울을 세운 얇은 벽이 서 있는데, 이 벽 하나가 침실로 이어지는 동선을 슬쩍 가려주면서도 답답해 보이지 않게 공간을 반사시켜 확장하는 역할까지 겸한다. 작은 집일수록 벽 하나, 마감재 하나가 여러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는 걸 이 코너가 잘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갈바닉 스틸 계단과 그 너머로 보이는 다이닝 공간, 책장

계단 하나로 세 가지 일을 해내다

두 층의 경계, 그러니까 바닥 레벨이 바뀌는 지점에 계단을 앉힌 것이 이 집의 진짜 핵심이다. 별도의 면적을 잡아먹지 않고 레벨 차이 자체를 계단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갈바닉 스틸로 짠 계단은 살대가 성기게 배치돼 있어 시각적으로 무겁지 않고, 빛과 시선이 그대로 통과한다. 그러면서도 거실과 다이닝·주방 영역을 부드럽게 나눠주는 경계 역할까지 한다. 수직 이동, 공간 분할, 시각적 개방감이라는 세 가지 요구를 계단 하나로 동시에 풀어낸 것이다.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하나의 요소에 여러 기능을 몰아준 전형적인 설계 전략인데, 이 집처럼 면적이 빠듯할 때 특히 효과적이다.

원목 다이닝 테이블과 벽면 가득한 책장

계단 너머, 책으로 둘러싸인 다이닝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다이닝 공간은 이 집에서 가장 밝은 자리를 차지한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높아진 층고 구간까지 깊숙이 파고들면서, 면적 대비 훨씬 넓어 보이는 인상을 만들어낸다. 벽 한 면을 통째로 채운 책장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 있고, 원목 테이블과 원저 체어 두 개가 그 앞에 소박하게 놓여 있다. 화려한 장식 없이도 책이라는 오브제 자체가 이 집의 성격을 대변하는 셈이다. 2BOOKS 디자인이라는 스튜디오 이름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장면이랄까.

주방 오픈 선반 위 머그컵과 커피용품, 스테인리스 싱크

최소한의 동선, 최대한의 살림

다이닝 옆으로 붙은 주방은 크지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오픈 선반에는 머그컵과 모카포트, 그릇 몇 개가 정갈하게 올라가 있고, 그 뒤로는 은은한 테라코타 톤 벽면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흰색 하부장과 스테인리스 싱크가 만드는 담백한 조합 위에 따뜻한 색의 벽 마감이 더해지면서,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미니멀한 부엌에 온기가 생긴다. 슬라이딩 도어로 여닫을 수 있게 해둔 것도 눈에 띄는데, 요리할 땐 열어서 다이닝과 이어붙이고 평소엔 닫아 정리된 인상을 유지할 수 있게 한 배려로 보인다.

드레스룸의 행거에 걸린 옷과 전신 거울

계단 아래, 숨어 있는 수납

침실로 들어가기 전 지나치는 작은 드레스룸은 계단 옆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행거 하나와 전신 거울이 전부인 미니멀한 구성이지만, 이 좁은 통로 하나가 옷장이라는 부피가 큰 가구를 따로 두지 않아도 되게 해준다. 흰 벽과 흰 바닥으로 마감해 존재감을 최소화한 덕분에 실제 면적보다 넓게 느껴지는 것도 장점이다. 작은 집에서는 이렇게 이동 동선 자체를 수납 공간으로 겸용하는 아이디어가 의외로 크게 작용한다.

침실 침대와 헤드보드 뒤 젖빛 유리 채광창

한 층 올라간 침실, 빛을 끌어들이다

이 집의 구조적 결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역시 침실이다. 높은 층고 구간에 침실을 올림으로써, 일반적인 위치에 침실을 뒀다면 생겼을 시야 차단을 없앴다. 덕분에 자연광이 집 안쪽 깊숙한 곳까지 끊기지 않고 도달한다. 침대 헤드보드 뒤로는 젖빛 유리로 마감한 채광창이 나 있어, 사생활은 지키면서도 부드러운 빛을 침실 안으로 들여보낸다. 좁은 면적일수록 체감되는 개방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이 방이 증명하는 셈이다.

테라코타 톤 미네랄 마감 욕실, 세면대와 거울

흙빛 미네랄 마감이 만드는 조용한 온기

욕실 벽면은 미네랄 코팅으로 마감해 은은한 테라코타 톤을 냈다. 흰 세면대와 도기, 스테인리스 수전이 주는 차가운 인상을 이 흙빛 벽이 부드럽게 눌러준다. 집 전체에 깔린 미네랄 코팅 바닥과 이어지는 마감이라, 욕실 문을 열고 들어와도 낯설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결된 느낌을 준다. 화려한 타일이나 장식 없이도 색과 질감만으로 공간의 인상을 완성한 사례라 할 만하다.

이 집은 문제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층고가 제각각인 낡은 구조를 억지로 평평하게 만드는 대신, 그 단차 자체를 계단이라는 하나의 오브제로 승화시킨 결정이 33제곱미터라는 숫자를 무색하게 만든다. 좁은 집을 넓게 쓰는 방법은 결국 면적을 늘리는 게 아니라 단면을 다르게 읽는 데서 나온다는 걸, 왕 아파트는 조용히 보여준다.

 

 

Architects2BOOKS Design
DesignerJeff Weng
PhotosMoooten studio
CategoryApartments
CountryTaip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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