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로 묶은 그리스 별장, Bridge House Porto Heli

그리스 별장이라고 하면 대개 산토리니 절벽의 화이트 큐브부터 떠오른다. 그런데 펠로폰네소스 반도 동쪽 끝 휴양지 포르토 헬리(Porto Heli)의 소나무 언덕에 선 Bridge House는 그 익숙한 공식에서 한 발 비켜나 있다. 집 네 채가 한 줄로 어깨를 붙이고, 그 위를 가늘고 긴 2층 매스가 다리처럼 가로지른다.

출발점은 건축주의 꽤 까다로운 주문이었다. 좁고 긴 땅에 서로 독립된 집 네 채를 넣되, 필요하면 세 채로, 먼 훗날에는 한 채로도 합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아테네의 Klab architecture는 이 복잡한 숙제를 ‘1층을 최대한 비운다’는 한 가지 원칙으로 풀어냈다. 프로그램이 복잡할수록 오히려 답이 선명해진다는 걸 보여주는 집이랄까.

소나무 숲 너머로 길게 누운 Bridge House 전경, 그리스 포르토 헬리 해외주택
© Panagiotis Voumvakis

그리스 별장 단지가 소나무 숲에 몸을 낮춘 이유

대지는 베르베론다 만(Ververonda Bay)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있다. 앞으로는 아르골리코스만과 펠로폰네소스 동쪽 해안선, 그리고 스페체스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땅 자체는 작고 길쭉하며 대체로 평평한데, 서쪽 한 면만 가파르게 떨어진다. 사방은 소나무 숲이다.

이런 땅에 집 네 채를 올리면 보통은 덩어리가 커지고 숲을 압도하기 쉽다. Bridge House는 반대로 수평선을 따라 길고 낮게 눕는 쪽을 택했다. 멀리서 보면 숲 위에 화이트 선 하나를 그어놓은 듯한 인상인데, 네 세대가 모여 사는 건물이라는 사실이 바로 읽히지 않을 만큼 단정하다.

캔틸레버로 튀어나온 Bridge House 측면 외관과 극적인 하늘
© Panagiotis Voumvakis

지붕은 의무, 창 비율도 제한… 규제가 그린 실루엣

이 지역 규정은 지붕을 반드시 얹도록 하고, 창의 비율까지 제한한다. 평지붕 큐브로 바다 쪽을 통창으로 터버리는 요즘 지중해 별장의 문법이 처음부터 막혀 있었던 셈이다. 설계팀도 이 조건이 형태에 상당한 제약을 줬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사진 속 지붕은 무겁기는커녕 칼날처럼 얇다. 박공의 경사를 길게 끌고 나가 양 끝을 허공으로 내밀었고, 그 아래로 테라스와 유리벽이 빠져 들어간다. 규제가 요구한 지붕을 오히려 이 집에서 가장 날렵한 선으로 바꿔놓았다. 제약이 많을수록 디자인이 재미있어지는 건 건축에서 꽤 자주 맞는 말이다.

수영장 네 개가 나란히 놓인 Bridge House 항공 사진
© Panagiotis Voumvakis

네 채가 세 채로, 다시 한 채로 — 합쳤다 나누는 임대주택

하늘에서 보면 구성이 명확해진다. 같은 폭의 유닛 네 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유닛마다 앞마당과 수영장을 하나씩 거느린다. 벽 몇 개를 열면 이웃한 두 집이 한 집이 되고, 언젠가는 전체가 한 가족의 큰 별장이 될 수도 있다.

앞서 소개한 〈한 집인데 마을처럼 흩어졌다, House of Cluster〉가 한 가족을 여러 채로 흩어놓았다면, 이 집은 거꾸로 여러 세대를 한 줄로 꿰었다. 지금은 네 팀이 따로 빌려 쓰는 임대주택이지만, 가족 구성이나 소유 구조가 바뀌면 건물도 따라 몸집을 바꿀 수 있다. 세컨드하우스를 투자 겸 휴가지로 쓰는 요즘 흐름을 생각하면 꽤 현실적인 설계다.

2층 매스 아래 다리처럼 뚫린 틈이 보이는 Bridge House 정면
© Panagiotis Voumvakis

2층 매스가 다리가 되는 순간

이름이 왜 Bridge House일까? 답은 정면에 있다. 침실이 들어간 좁고 긴 2층 매스가 계단실과 거실 위를 그대로 지나가면서, 매스 아래 곳곳에 다리 밑 같은 빈틈이 생긴다. 양 끝은 캔틸레버로 허공에 떠 있다.

설계팀의 컨셉 다이어그램은 아예 트러스 다리를 그려놓고 시작한다. 1층의 작은 코어들이 교각, 2층 매스가 상판이라는 이야기다. 구조 용어가 낯설다면 〈집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 건축 구조 영어 용어 11개〉에서 캔틸레버와 트러스를 먼저 짚고 오는 것도 좋다.

이 빈틈에는 쓸모도 있다. 남북 축으로 나란히 뚫린 틈 사이로 바람길이 생겨 한여름 열기를 식혀준다. 에어컨에만 기대지 않고 형태로 통풍을 잡는, 지중해 건축이 오래 써온 지혜를 다리 모양으로 다시 꺼낸 셈이다.

타공 금속 퍼골라 아래 수영장과 빈백이 놓인 Bridge House 반외부 공간
© Panagiotis Voumvakis

타공 퍼골라가 만드는 하루치 그늘

2층 매스가 1층보다 앞으로 살짝 튀어나오면서 그 아래에 반쯤 열린 그늘 공간이 생겼다. 여기에 건물 길이를 따라 긴 퍼골라가 이어진다. 퍼골라는 조약돌 무늬처럼 구멍을 낸 금속 패널로 덮여 있어, 바닥에 점점이 흩어진 빛 무늬를 떨어뜨린다.

재미있는 건 이 그늘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해가 움직이면 빛 무늬도 같이 움직이고, 머무는 사람은 그날 기분과 시간에 따라 그늘과 햇볕 사이에서 자리를 고른다. 수영장 가장자리에 흩어진 빈백들이 이 집의 진짜 거실이 어디인지 말해준다.

타공 퍼골라 그림자가 드리운 테라스와 이어지는 Bridge House 거실 겸 주방
© Panagiotis Voumvakis

실내는 작게, 바깥은 크게 — 그리스 별장의 우선순위

1층 실내는 놀랄 만큼 작다. 주방과 아담한 거실이 전부인데, 큰 개구부가 풍경을 액자처럼 끌어들여 실제보다 넓게 느껴진다. 미닫이를 열면 테라스와 거실의 경계가 거의 사라진다.

설계팀의 논리는 명쾌하다. 따뜻하고 햇볕 좋은 계절에 주로 쓰는 집이라면 실내보다 바깥이 더 중요하다는 것. 다만 바깥이 그냥 넓기만 해서는 안 되고, 아침 커피와 한낮의 낮잠, 해 질 녘 저녁 식사에 각각 맞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덧붙인다. 실내를 일부러 작게 두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간다. 공간의 크기가 휴가를 보내는 방식까지 설계하는 셈이다.

오크 패널과 블랙 마블 수납장이 놓인 Bridge House 1층 거실
© Panagiotis Voumvakis

오크와 블랙 마블, 화이트 상자 속 두 가지 온도

실내 마감은 화이트 벽을 바탕으로 오크 패널과 블랙 마블 톤 수납장, 짙은 석재 느낌의 바닥 타일을 맞붙였다. 창 양옆을 오크 패널로 감싸 따뜻한 기운을 더하고, 낮은 블랙 수납장이 바다 쪽 창 아래를 무겁게 눌러준다. 화이트 일색인 외관과 달리 안에서는 따뜻함과 무게감이 동시에 읽힌다.

조명은 의외로 단출하다. 바 테이블 위 천장에 사각 프레임 두 개를 겹친 블랙 LED 등이 하나 달려 있을 뿐, 벽이나 바닥을 비추는 보조 조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낮에는 큰 창이 모든 걸 해결하지만, 해가 지면 천장등 하나가 공간 전체를 떠맡게 된다. 게다가 짙은 바닥은 빛을 먹기 때문에 같은 밝기여도 실내가 더 어둡게 읽힌다.

조명은 전반·국부·연출의 세 겹이 겹쳐야 공간에 깊이가 생긴다. 이 집 같은 구성이라면 오크 패널 상부나 창틀 위에 간접 라인 조명을 숨겨 벽을 위로 씻어내고, 소파 옆에는 2700~3000K 웜톤 플로어 램프를 하나 두는 것만으로도 저녁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천장등에 디머를 달면 한 가지 밝기로 밤 전체를 버틸 필요도 없다.

코너 유닛 앞 인피니티 수영장과 바다 전망, Bridge House
© Panagiotis Voumvakis

코너 유닛만 누리는 인피니티 풀과 바다 전망

양 끝 코너 유닛은 가운데 유닛과 대접이 다르다. 수영장 끝이 그대로 바다 쪽 허공으로 열리는 인피니티 풀이 놓였고, 캔틸레버로 내민 지붕 아래 유리 거실이 그 물을 마주한다. 수면과 만의 물빛이 이어지는 장면은 이 단지에서 가장 사진발이 좋은 자리다.

바다에서 꽤 떨어진 언덕 위 임대 별장에서 수영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설계팀이 1층을 비워 마당과 수영장을 최대한 확보하려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같은 건물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경험의 등급이 나뉘는데, 이 차이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상품으로 만든 점이 영리하다.

위에서 내려다본 Bridge House 코너 유닛의 자쿠지 테라스
© Panagiotis Voumvakis

2층 테라스의 자쿠지, 프라이버시를 위한 장치

코너 유닛의 2층에는 침실이 하나뿐이다. 대신 그 옆으로 넓은 테라스와 자쿠지가 붙어 있어, 아래층 수영장과는 다른 결의 휴식을 준다. 아래에서 올려다보이지 않는 높이라 남의 시선에서 한결 자유롭다.

가운데 두 유닛은 방식이 다르다. 2층 침실 여러 개가 작은 공용 발코니로 이어지는데, 방마다 욕실이 따로 붙어 있어 서로 독립적으로 쓸 수 있다. 친구 몇 팀이 함께 빌려도 아침 욕실 줄서기로 신경전을 벌일 일이 없다는 얘기다. 방은 작아도 각자의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 공유형 숙소에서 그만큼 중요한 조건도 드물다.

사다리로 오르는 아이용 다락이 있는 Bridge House 2층 침실
© Panagiotis Voumvakis

지붕선이 남긴 덤, 아이들의 다락

규정 때문에 얹어야 했던 지붕은 뜻밖의 선물도 남겼다. 침실에서 이어진 지붕선 아래로 작은 다락이 생겼고, 설계팀은 이곳을 어린아이들 몫으로 정했다. 벽에 붙은 원목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방식이다.

천장이 낮고 아늑한 다락은 아이들에게 거의 본능적인 끌림을 준다. 어른 눈높이에선 자투리지만, 아이 눈높이에선 자기만의 아지트다. 가족 단위 임대 손님이라면 이 사다리 하나 때문에 예약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사진 안쪽 욕실에서는 거울 뒤로 숨긴 웜톤 간접 조명이 슬쩍 보이는데, 침실에서 욕실로 넘어갈 때 눈부심 없이 시선을 이끄는 작은 배려다.

지하층에 빛을 내려보내는 유리 바닥 광정과 Bridge House 중정
© Panagiotis Voumvakis

지하층 침실을 밝히는 천창과 중정

이 집의 방들은 2층에만 있는 게 아니다. 1층을 비우기 위해 침실 일부를 지하로 내렸는데, 지하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어둡고 눅눅한 방과는 거리가 멀다. 1층 바닥에 천창과 작은 중정을 촘촘히 심어 아래층까지 빛을 내려보낸다.

사진 속 통로 바닥에는 유리 난간을 두른 광정이 뚫려 있고, 그 옆 큼직한 석재 화분에서는 올리브 나무가 자란다. 통로 끝은 바다 쪽으로 열려 있다. 땅속에 묻힌 방은 한여름에도 비교적 서늘하게 유지되니, 빛만 해결된다면 지하는 휴양지 침실로 의외로 괜찮은 선택이다.

서쪽 급경사 위에 높이 차를 두고 선 Bridge House 외관
© Panagiotis Voumvakis

대칭을 깬 서쪽 경사, 그리스 주택의 마지막 디테일

전체적으로 Bridge House는 좌우 대칭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다. 그 균형을 깨는 건 땅이다. 서쪽의 가파른 경사 때문에 그쪽 끝 유닛은 바닥 높이가 달라지고, 더 크고 높은 옹벽이 집을 받친다.

도로 쪽에서 보면 표정이 또 다르다. 거칠게 쌓은 자연석 담장과 블랙 대문이 길을 따라 이어지고, 그 뒤로 화이트 매스와 지붕선이 담담하게 올라선다. 바다를 향한 쪽이 개방과 휴식이라면 길을 향한 쪽은 경계와 보호다. 다리처럼 뻗은 매스 하나가 이 두 얼굴과 네 가구의 삶을 한 줄로 이어 붙이고 있다.

ArchitectsKlab architecture (Konstantinos Labrinopoulos, Katerina Tsitsiva)
PhotosPanagiotis Voumvakis
Category별장, 임대주택(4세대)
Country그리스
Materials콘크리트, 자연석, 타공 금속 패널, 오크 패널
Location포르토 헬리(Porto Heli), 펠로폰네소스
Area500m²
Year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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