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미터였던 천장, 4.7미터의 높이를 되찾다
건축가들이 가장 먼저 손댄 건 다락과 내부 칸막이였다. 이를 걷어내자 원래 3.3미터였던 천장이 4.7미터까지 치솟았다. 좁고 답답했던 상부 공간이 사라지고 대신 압도적인 수직감이 들어선 것이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붙박이 책장과 그 위를 오르내리는 알루미늄 트랙 사다리는 이 새로운 높이를 실감하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하다. 사다리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높은 선반의 책을 꺼내고 창문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도구로 쓰인다.
닫혀 있던 창이 다시 광장을 향해 열리다
천장을 걷어내는 작업과 함께 진행된 건 창문 복원이었다. 두 줄로 나란히 놓인 세 개의 창 중 하나는 오래전 벽으로 막혀 있었는데, 이번 공사에서 다시 뚫렸다. 그 결과 산 조르조 광장의 오랜 시장 풍경과 산 조르조, 산 토르페테 성당의 돔 실루엣이 실내 깊숙이 들어오게 됐다. 책장 아래 놓인 유리 식탁에 앉으면 이 오래된 풍경이 고스란히 액자처럼 걸리는 셈이다.
책과 카탈로그, 그리고 손님을 위한 집
이 집의 브리프는 명확했다. 늘어나는 책과 카탈로그, 예술 작품을 담을 수납과 손님을 초대하거나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 필요했다. 건축가들은 이 요구를 하나의 벽면 서가로 압축해 풀어냈는데,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수직 프레임이 리듬감 있게 반복되며 방대한 수납량을 확보한다. 테라초 바닥과 아치형 창이 만드는 오래된 분위기 속에서도 수납 시스템만큼은 철저히 현대적이다.
압축된 진입로가 열어젖히는 반전
현관 쪽 공간은 리노베이션 전 칸막이를 그대로 살렸다. 광장을 향한 큰 창의 반대편, 그러니까 채광이 상대적으로 아쉬운 자리에 침실과 팬트리, 욕실을 몰아넣은 것이다. 그 위로는 오쿠메 합판으로 짠 다락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얹혔다. 낮고 좁게 압축된 입구 통로를 지나야만 비로소 탁 트인 두 개 층 높이의 거실이 펼쳐지는 구성인데, 공간을 체험하는 순서 자체가 하나의 연출인 셈이다.
채광이 만든 거실의 표정
안쪽으로 들어서면 거실은 밝기와 개방감으로 먼저 말을 건넨다. 남동쪽과 남서쪽 벽에 낸 세 개의 큰 창이 하루 종일 빛을 실내로 끌어들이고, 그중 4미터에 가까운 창 하나는 산 조르조 성당의 돔을 그대로 프레이밍한다. 액자와 사진으로 채운 갤러리 벽, 그리고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이 이 거실의 시각적 리듬을 만든다. 주방과 다이닝, 그리고 작업 공간으로도 쓸 수 있는 리빙룸이 서로 끊김 없이 흐르도록 배치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다락 위, 또 하나의 작업실
다락 한편에는 책상을 놓아 홈오피스로 꾸몄다. 타자기와 스탠드 조명, 빼곡한 책장이 늘어선 이 자리는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요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다. 아치형 창 두 개가 나란히 뚫려 있어 낮은 층고에도 답답함이 없고, 원목 바닥과 흰 벽이 차분한 배경을 만들어준다. 손님을 위한 공용 공간과 개인 작업 공간이 한 지붕 아래 자연스럽게 공존하도록 짠 구성이라 하겠다.
책장 사이에 감춘 잠자리
다락의 또 다른 구석엔 낮은 침대 하나가 책장 속으로 파고들듯 자리 잡았다. 머리맡엔 포스터 액자들을 나란히 세워두었고, 아래로는 흰색 수납장과 주방 상부장이 이어진다. 높이를 달리한 다락 구조 덕분에 같은 층고 안에서도 침실, 서재, 수납이 각자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프라이버시와 개방감을 동시에 챙기려는 시도로 읽힌다.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 수납까지 겸하다
리노베이션 전 다락으로 오르내리던 좁은 계단은 이번 공사에서 완전히 다시 설계됐다. 짙은 남색 천장 아래, 원목 프레임과 흰색 패널로 마감한 계단 옆면은 그 자체로 삼각형 수납장이 된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선이 곧 수납공간이 되는 셈이라, 좁은 평면에서 한 뼘의 여유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는 인상을 준다. 반투명 유리창을 통해 스며드는 빛이 이 좁은 통로에도 표정을 더한다.
침실에서 바라본 부엌, 그 거리감
침실은 현관 쪽 칸막이 안에 조용히 자리했다. 문을 열면 바로 주방이 눈에 들어오는 구조인데, 짙은 남색 천장과 화이트 벽이 공간마다 미묘하게 다른 색감으로 나뉘어 있어 물리적으로 이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는 분리된 느낌을 준다. 침대 머리맡 선반에 쌓아 올린 책들과 벽에 건 사진 한 장이 이 방의 사적인 온도를 보여준다. 큰 집이 아니어도 각 공간이 저마다의 성격을 갖도록 세심하게 나눈 흔적이다.
짙은 남색 타일이 만든 욕실의 분위기
욕실은 짙은 남색 세로 타일로 벽 전체를 감쌌다. 좁고 세로로 긴 창이 타일 사이로 빛을 흘려보내며, 유리 파티션 하나로 샤워 공간과 나머지 영역을 가른다. 다른 방들이 대체로 밝고 차분한 톤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욕실만큼은 짙은 색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이 대비가 오히려 집 전체의 리듬을 살려준다. 오래된 지붕 트러스가 슬쩍 보이는 천장 마감도 놓치기 아까운 디테일이다.
옛것과 새것이 만나는 지점
세면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원형 볼 세면대와 원목 수납장이 짙은 타일과 대비를 이룬다. 거울 옆으로 걸린 사진 액자 두 점이 이 욕실에마저 갤러리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자재와 색을 공간마다 다르게 쓰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로 묶이는 감각, 이 집이 끝까지 놓치지 않은 지점이다. 역사적 요소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해법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 집은 시대와 시대 사이의 대화를 시도한다. 다락 하나를 걷어냈을 뿐인데 공간의 성격이 통째로 바뀌었다. 천장을 높이고 창을 되살리는 것만으로 옛 저택의 위엄과 작은 실사용 면적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이 집은 보여준다. 대저택의 잔재 속에 작은 삶을 밀어 넣은 게 아니라, 작은 삶에 맞게 대저택을 다시 편집한 쪽에 가깝달까.
Architectsllabb Architettura (Federico Robbiano, Luca Scardulla)
DesignerAnna Positano, Gaia Cambiaggi | Studio Campo
Category주거
CountryItaly, Geno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