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약까지 걸어놨는데 왜 더 내라는 걸까 — 재개발 분담금이 불어나는 이유

재개발 구역 입주권을 사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는 통지가 있다. 조합에서 날아오는 분담금 인상 안내문이다. 자재비와 인건비가 올랐으니 공사비를 더 달라는 시공사의 요구를 조합이 받아들이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조합원 개개인의 몫으로 돌아온다. 계약서에 물가 변동으로 공사비를 조정하지 않는다는 특약까지 박아뒀는데도 왜 더 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지점이다.

공사비 증액이 실제로 분담금에 반영되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 단계를 알아두면 조합원 입장에서도, 입주권 매수를 저울질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협상 테이블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

총회 의결 없이는 한 푼도 못 올린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은 반드시 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못박아 뒀다. 예산으로 미리 정해둔 사항이 아니라면 예외가 없다. 판례도 이 조항을 강행규정으로 본다. 총회를 거치지 않은 공사비 증액 약정은 애초에 무효라는 뜻이다. 심한 경우 총회 없이 계약을 체결한 조합 임원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공사와 조합 집행부끼리 물밑에서 합의를 봤다 해도, 총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그 증액은 법적으로 없는 셈이 된다. 조합원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인상 여부가 아니라 그 인상안이 총회 안건으로 올라왔는지, 어떤 근거로 산출됐는지다.

공사비 검증, 만능은 아니지만 방패는 된다

도시정비법은 공사비 검증 제도도 함께 두고 있다. 조합원 5분의 1 이상이 요청하거나, 공사비가 일정 비율 이상 뛰면 조합은 한국부동산원 같은 정비사업 지원기구에 검증을 요청해야 한다. 시공자 선정이 사업시행계획인가 전이었다면 10%, 인가 후였다면 5%가 기준선이다.

다만 이 검증 결과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참고 자료 정도로 기능한다는 한계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조합원 입장에서는 시공사가 부르는 금액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근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가 변동 배제 특약도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물가 변동으로 공사비를 조정하지 않는다’는 특약의 효력이다. 대법원은 종전 판례에서 이런 특약을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봐 왔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으로 그대로 확정한 하급심 판단은 결이 달랐다. 발주자 쪽 사정으로 착공이 늦어지는 사이 철근 값이 급등한 사안에서, 배제 특약 가운데 표준 도급계약의 계약금액 조정 조항에 반하는 부분은 무효라고 본 원심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 역시 경제 상황 변동에 따른 부담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약정은 무효로 본다.

물론 배제 특약이 일률적으로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가 상승 폭과 공사 지연의 귀책 사유 등을 함께 따져야 한다는 게 판례의 취지다. 다만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 조합이 특약 하나만 믿고 증액 요구를 거절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협상이 끝내 결렬돼 조합이 계약 해지 카드를 꺼내면 문제는 더 커진다. 시공사가 이미 들어간 공사대금을 근거로 사업 부지에 유치권을 행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어서다. 새 시공사를 다시 선정하는 동안 사업이 표류하면 금융비용이 쌓여 분담금은 오히려 더 불어나는 역설이 생긴다.

결국 조합원이라면 증액 안건이 총회에 오르기 전에 산출 근거부터 뜯어봐야 하고, 필요하면 공사비 검증 요청권을 실제로 써야 한다. 무조건적인 반대가 공사 중단과 사업 표류로 이어져 분담금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부분이다. 입주권 매수를 검토하는 투자자라면 공사도급계약상 물가 조정 조항과 공사비 검증 이력, 증액 관련 총회 의결 경과를 매수 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다. 지금의 예상 분담금이 아니라 증액 가능성까지 얹어 보수적으로 셈해야 나중에 뒤통수를 맞지 않는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이미지: Wikimedia Commons, ‘Jamsil Apartment Complex Phase 5’ ⓒ InSapphoWeTrust (CC BY-SA 2.0), 본문 내용과 직접 관련 없는 예시 이미지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공사비 증액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에 가까워졌다. 그렇다면 관건은 증액 자체를 막는 게 아니라, 그 증액이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를 조합원 스스로 따져 묻는 데 있다. 분담금 통지서 한 장을 받아들고 당황하기 전에, 총회 의결과 공사비 검증이라는 두 개의 방어선이 이미 법에 마련돼 있다는 사실부터 기억해 둘 만하다.


이 기사는 아래 원문 보도를 참고해 PHM ZINE이 새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진과 자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 ‘재개발 공사비 특약’ 갖춰도…분담금 증액은 상시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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