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을 줄였더니 차가 사라졌다

차가 막히면 도로를 넓히면 된다 — 20세기 내내 도시들이 따른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은 틀렸다.

도로를 넓힐수록 통행 시간이 줄어드니 사람들은 차를 더 많이 끌고 나온다. 자가용이 주는 지위감까지 더해지면 자동차 통행은 늘면 늘었지 줄지 않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연구진이 1985년부터 2005년까지 유럽 545개 도시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도 같은 결론이었다. 20년 동안 도로 용량을 키운 도시일수록 정체가 풀리기는커녕 차량 통행량 자체가 늘어났다.

서울 청계천
이미지: Wikimedia Commons, ‘Cheonggeyechon River in Seoul’ ⓒ Ken Eckert (CC BY-SA 4.0)

정반대의 현상, ‘교통 증발’

그렇다면 반대로 차선을 줄이면 어떻게 될까. 상식적으로는 남은 차들이 좁아진 도로로 몰려 정체가 더 심해질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르다. 도로 공간을 자동차에서 걷기·자전거·대중교통으로 넘기면, 사라진 차선만큼 정체가 옮겨가는 게 아니라 교통량 자체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된다. 학계에서는 이를 ‘교통 증발(traffic evaporation)’이라 부른다. 20년 넘게 연구되고 여러 도시에서 확인된 현상이지만, 정작 정책 결정자와 여론 주도층 상당수는 여전히 “차선을 줄이면 더 막힌다”고 믿는다.

서울은 이미 증명해 봤다

이 현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가 서울 청계천이다. 한때 이 자리에는 고가도로가 있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왕복 다차선 고가를 통째로 철거하고 그 자리에 하천과 산책로를 되살렸을 때, 우려했던 도심 전역의 극심한 정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라진 도로 공간만큼 자동차 통행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지금 청계천을 걷는 사람들은 이곳이 한때 자동차로 빼곡했던 고가도로였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그만큼 도시는 도로 공간이 줄어든 상태에 적응했고, 그 적응의 결과가 지금의 풍경이다.

청계천 산책로
이미지: Wikimedia Commons, ‘Cheonggeyechon Bridge Waterfall in Seoul’ ⓒ Ken Eckert (CC BY-SA 4.0)

도로를 늘리면 차가 늘고, 도로를 줄이면 차가 준다 — 두 현상은 사실 같은 원리의 양면이다. 자동차 통행량은 고정된 값이 아니라 도로 조건에 따라 변하는 값이라는 뜻이다. 보행친화 거리나 대중교통 전용차로를 두고 여전히 논쟁이 벌어지는 도시가 많지만, 정작 서울은 이미 20년 전 그 답 하나를 도심 한복판에 만들어 놓았다.


이 기사는 아래 원문 보도를 참고해 PHM ZINE이 새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사진과 자세한 내용은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ArchDaily — Traffic evaporation: what happens when road space is redistributed

더 볼만한 기사

댓글 남기기

댓글 내용을 입력해 주세요
이름을 입력해 주세요

추천 기사

런던 도심 속 고아파트 탑층의 작고 독특한 보금자리

도시는 이미 오래전 포화 상태가 되었고 기존의 공간을 허물지...

사용된 목재 종류만 10개. 오직 나무로만 만든, 한국에도 잘 어울릴 일본 목조 주택

주택 내부를 인테리어 하는 데는 다양한 재료들이 있다. 목재와...

달 착륙선을 닮은 산장, 칠레의 철제 나무집

칠레 남부 Araucanía 지역, 활화산 Llaima와 Lonquimay 사이에 자리한...

산다는 사실 하나로 2억이 갈렸다 — 종부세 개편안 확정

정부가 2026년 세제개편안에서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를 실거주 1주택자 14억원, 비거주 12억원으로 나눠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