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마을이 사라지고 파크(Park)와 빌리지(Village)가 들어섰다. 화려해지고 규모가 커졌다. 마트와 상가가 들어서고, 더욱 편리해졌다. 그러나 내 옆 이웃과의 소통의 자리는 없어졌다.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표어 아래 나와 내 가족의 삶은 있지만 나와 친구, 나와 이웃의 왕래와 소통은 사라졌다.
교류와 소통이 단절된 시대에 모두를 위한 파크(Park)와 빌리지(Village)가 아닌 내 가족과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이웃과 어울려 평범한 하루를보낼 만한 집, 그리고 그 집들이 소박하게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에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
나와 우리가 함께 사는 다가구 주택
건축가는 자신은 ‘마당이 있는 집’이라 부르는 주택이지만, 동네에서는 왕자궁 백악관으로 더 잘 알려진 주택이다. 마을 이름이 왕자궁인데, 그곳에 백악관처럼 하얀 집이 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다가구 주택은 약 151평(500m2)의 대지에 지어진 건물 2개로 구성된 다가구 주택(5세대 거주)으로서 건축 면적이 234m2(약 71평), 연면적이 488m2(약 148평)이다.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서 외부는 주로외단열 미장으로 마감하였고, 내부는 주로 목재와 벽지로 마감하였다.
각 가구마다 다른 삶을 온전히 담아낸 다세대 건물
외부 모습부터 기존 다가구 주택과 다르다. 모든 가구가 하나로 이어져 만나는 소통의 계단, 각기 다른 위치의 창 배열, 각 가정의 생활에 맞춘 다른 실내 구조 등 성냥갑의 소형 아파트 같은 디자인과 설계에서 탈피했다.
반면에 ‘왕자궁 백악관’은 여러 세대가 같은 건축물에 살고 있지만 개별 가족의 스토리를 담아내는 설계가 특징이다. 그리고 화려하지 않다. 이는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단순히 미적 요소로만 결부시키지 않고 건축의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그것이 형태와 공간을 결정짓게 한다는 건축사 사무소 ADMobe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아이를 위한 놀이 공간이 있는 다가구 주택
주차장은 어른들이 없는 낮에는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가 되며, 휴일에는 모두의 휴식 장소로 사용한다. 바람이 시원한 어느 가을 저녁에 이웃 가족 모두와 어울려 소박하지만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을 차려 놓고 여유로운 식사를 즐길 수는 공간이다.
만나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소통 공간으로 계단 활용
계단을 기능에 국한한 일반 다가구 주택과는 달리 소통, 교류의 공간으로 확대해석했다. 이 왕자궁 백악관의 가장 큰 특징이자 즐거움이 작되는 포인트다.
어른들에게 있어서 마을 사람들과 네트워킹 장소는 당연히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길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마을의 놀이 장소도 역시나 골목길이다. 골목길의 기능을 하고 있는 건물 사이의 공간, 그 공간을 지나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계단, 이 모두가 소통과 어울림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생활의 변화와 즐거움은 테라스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주택에도 테라스는 있다. 그러나 그 테라스는 외부를 향해 열린 공간 즉 마당이 아니다. 먼지 묻은 각종 가재도구와, 아버지의 담배 재떨이가 놓여 있는 내부의 유휴 공간일 뿐이다.
반면 ‘마당이 있는 집’은 모든 세대에 테라스(마당)를 설계하였고, 모두 열린 공간이나 위치와 규모는 개별 가족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마당에 서면 숲의 맑고 시원한 기운이 바로 피부로 느껴진다. 또한 바람에 흔들리는 느티나무 소리를 들으며 마당 한 켠에 기대어 낮 잠을 청할 때 그 편안함, ‘마당이 있는 집’이 주는 가장 큰 행복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건축이 ADMobe의 철학이다. 이 다가구 주택은 그 철학이 표현된 주택 설계 중 하나다. 모든 공간을 충실하게 담아내면서 재미있게 연결된다.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건축물의 특성에 따라 내부의 공간을 연결하는 방법도 중복도 형태의 평면 구성을 갖게 하였다. 가족들의 동선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형태와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테라스와 주방이 가까이 설계된 것도 특징 중의 하나다. 아파트의 평면 구조가 주택 구조의 표준이 되어 버린 지금 주방은 이웃사람들에게 개방된 공간이 아니다. 주방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방을 지나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 그러나 ‘마당이 있는 집’은 테라스(마당) 출입문 옆에 있으며, 조그마한 주방 창문을 통해 밖에 있는 마당도 볼 수가 있다.
내 것의 경계가 완강할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이타심은 약해진다. 과거의 아파트, 주택 등 국내 건축 대부분이 내 것에 한 것만을 강화해왔다. 나를 침범하지마 라며. 사회의 변화는 어떤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느냐에 따라 변하고 영향을 미친다. 남양주의 이 가구 주택은 우리 사회와 우리 주거 환경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시작을 볼 수 있는 기분 좋은 주택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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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s
: ADMobe
Photos
: 송정근, 이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