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된 예산으로 집짓기를 결정한 건축주는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집 잘 짓는 건축가는 누구일까, 어떤 집을 지어야 할까…. 멋지고 맞춤한 집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기성화를 피할 방법이 있다.

30분쯤 대화를 나눴을 때다.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말했다. “나는 집을 몰라요. 그러나 집을 짓고 싶어요. 그러니 당신을 믿겠습니다. 계약서를 씁시다.” 건축주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계약금을 송금했다. 서로 길게 말할 것도 없었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다. 원주 젓가락집은 그렇게 한달음에 지어지게 됐다.

가설재 설치로 젓가락집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원주축산농협에 근무하는 건축주 이주훈 상무는 오래전부터 도시의 아파트를 떠나 한가한 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었다. 종갓집이라 친척들이 와도 여유로운 집에서 사는 게 꿈이었다. 고질병인 비염도 이유였다.

일단 원주혁신도시의 택지부터 분양받았다. 2014년 3월 무렵이었다. 틈틈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집짓기에 대해 알아봤다. 쉽지가 않았다. 검색을 해도 시공업자들만 나왔다. 집 잘 짓는 건축가가 누구인지 어떤 집을 지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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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채

우연히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대표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띈 것이 ‘건축가가 제안하는 소형주택 표준설계, 리빙큐브’였다. 건축가들이 제안하는 설계도면 수십 개가 올라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집도 여럿이었다. 마침내 길이 보였다. 이주훈 상무는 내친김에 김 대표를 만나러 서울로 올라왔다.

리빙큐브 홈페이지에 있는 ‘몇 번 도면’이라는 설명만으로도 충분했다. 후보군에 오른 세 가지 도면 가운데 여러 조건을 고려해서 한 가지 도면이 최종 낙점됐다. 그게 젓가락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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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애당초 젓가락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김주원이 아니다.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는 이중원과 이경아다. 3대가 함께 사는 자택 삼대헌으로 유명한 건축가 부부다.

젓가락집이라는 이름도 두 사람이 지었다. 김주원 대표는 이중원과 이경아가 설계한 젓가락집의 원형 설계를 건축주가 원하는 방향으로 특화시키는 수정 설계자 구실을 맡았다.

이렇게 원형 설계와 수정 설계의 2단계를 거쳐 집을 짓는 게 리빙큐브 집짓기다. 김주원 대표는 이것이 건축가가 집짓기 시장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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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원 미만의 예산으로 집을 지을 때 건축주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설계비다. 건축가에게 부탁하는 것은 시장의 흔한 집짓기 방식보다 설계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멋지고 맞춤한 집을 포기할 수는 없다.

원형 설계를 미리 선보이고 거기에 수정 설계를 하는 리빙큐브 방식은 작은 집에서의 설계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기존 하우스스타일의 건축가 그룹과 공모전을 통해 가세한 신진 건축가들이 집의 원형 설계를 내놓았다. 건축주의 요구나 대지 모양 등을 고려하지 않은 기초 설계다. 리빙큐브는 이런 도면들을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다.

효율성과 차별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법

건축주들은 이 중 하나를 고른다. 이제부터가 이른바 리빙큐브 매니저의 몫이다. 리빙큐브 매니저는 원형 설계에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나 건축 조건 같은 변수를 적용해서 최종 설계도면을 만든다.

리빙큐브 매니저는 하우스스타일의 김주원과 조한준 공동 대표가 번갈아 맡고 있다. 앞으로 두 사람 외에도 더 많은 리빙큐브 매니저가 탄생할 것이다. 수정 설계는 원형 설계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건축주의 요구 사항에 맞춰나간다.

리빙큐브 방식에서는 건축주가 실물을 직접 보고 계약을 할 수 있다.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소비자는 많지만 어떤 집을 지을지는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리빙큐브 방식에서는 이미 기초 설계도면이 있다. 해당 도면을 바탕으로 지어진 닮은꼴 집도 있다. 감을 잡기 쉽다.

건축가한테도 유리하다. 집을 짓다 보면 건축주들의 요구는 대동소이하기 마련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집의 모양은 대체로 보편타당한 경우가 많다. 리빙큐브 방식에서는 건축주들의 요구를 범주화하는 게 가능하다.

오히려 집의 특징이 두드러진 개성 있는 제안도 가능하다. 원형 설계에서는 범주화되고 수정 설계에서는 개별 요구에 맞춤화된다. 소비자들이 집을 짓고자 하는 건 기성화된 삶에서 탈피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리빙큐브 설계 방식은 탈기성화 욕망을 초벌 설계로 기성화했다가 재벌 설계로 다시 탈기성화한다. 기성화의 효율성과 탈기성화의 차별성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창문 방식으로 모서리를 창문으로 설치해 새로운 공간 뷰를 창조해 냈다.

30분 만에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이주훈 상무는 김주원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당신의 방식을 신뢰하고 동의합니다.” 집 한번 짓고 나면 수명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시공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즐거운 나의 작은 집을 지으려다 꼴도 보기 싫은 애물단지 위에서 억지로 살게 될 수도 있다.

리빙큐브 방식을 선택하면 집짓기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게 가능하다. 자연히 손발이 맞는 시공업자들과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만큼 집의 만듦새가 좋아진다.

이주훈 상무는 시공 과정에서도 김주원 대표에게 거의 모든 걸 일임했다. 공사대금도 김주원 대표를 거쳐서 지급했다. 사실상 김주원 대표가 건축주 역할까지 대리한 셈이다.

실제로 지어진 원주 젓가락집은 원형 설계자가 구상한 최초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수정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부분 부분이 바뀌었다. 외장재가 단순해졌다. 중정에 툇마루가 덧붙여졌고 계단 모양이 바뀌었다. 다락방이 늘고 창문 크기가 작아졌다.

이주훈 상무는 연방 말했다.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잘 나왔어요.” 건축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변수가 많은 비즈니스다. 건축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건 무엇보다 자기 집이 처음 설계 느낌 그대로 지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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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젓가락집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원형 설계는 젓가락집이라는 이름처럼 일자 형태다. 김주원 대표의 수정 설계 역시 원형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 게다가 건축주인 이주훈 상무도 과한 걸 싫어하고 치장하는 걸 기피하는 성격이다.

건축주는 끊임없이 줄이고 빼자고 요구했다. 건축가가 더 이상은 뺄 수 없다고 할 때까지 단순화했다. 그러다 보니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한 집이 지어졌다. 심지어 가구조차 간략하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가장 단순해서 가장 특별한 집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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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대표가 리빙큐브 방식을 떠올린 건 한국 주택 시장의 한계 탓이었다. 시장이 협소한 탓에 건축가들은 주택 설계를 외면하고 건축주들은 집짓기를 주저하는 실정이었다.

김주원 대표는 기차를 타고 가다가 보았던 일본의 전원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너무 아름다웠어요. 집이 예뻐서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죠. 한국의 풍경을 바꾸려면 예쁜 집을 지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끝내 리빙큐브 방식이라는 나름의 답을 찾아냈다.

2014년 11월 본격화된 하우스스타일의 리빙큐브 방식으로 이제까지 14채가 지어졌다. 그렇게 한국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신기주 (<에스콰이어> 기자)


  • 대지면적 – 279㎡
  • 건축면적 – 103.55㎡
  • 연면적 – 131.68㎡
  • 건폐율 – 37.11%
  • 용적률 – 47.20%
  • 외장 – 칼라강판, 스터코, 적삼목판재
  • 창호 – 이건 PVC시스템
  • 창호내장 – 실크벽지, 강마루, 예림ABS도어
  • 설계 저작권자 – 이중원+이경아(iSM 건축연구소)
  • 리빙큐브 매니저 –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대표
  • 시공 – ㈜시스홈씨엔엘
  • 건축가 – 이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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