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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도시채, 아파트 탈출 바라는 가족의 꿈을 담다

국내 주택의 역사는 가족의 세포 분열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다시 1인가구로 분화하는 풍경의 전면에는 ‘간섭 금지’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그러나 피보다 진한 물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맞벌이 부부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거는 이는 친정 엄마고, 독립을 선언한 30대 남녀의 냉장고엔 못 이긴 척 받아 든 본가의 김치가 있다.

지난 봄 판교에 들어선 주택 ‘도시채’는 삼대가 모여 사는 집이다. 이 집의 건축가이자 건축주인 김창균 소장(유타건축)은 아내와 두 아들 도윤ㆍ시윤, 처제 부부와 그 아들 채윤, 그리고 장인ㆍ장모까지 총 9명이 함께 사는 집을 지었다.

 

 

 

| 문제의 시작은 보증금이 문제

시작은 보증금 인상 요구였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던 김 소장은 지난해 봄 집주인에게서 전세 보증금을 “8,000만원 올려달라”는 말을 들었다.

눈 앞이 캄캄했으나 한편으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보증금 인상 요구였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던 김 소장은 지난해 봄 집주인에게서 전세 보증금을 “8,000만원 올려달라”는 말을 들었다. 눈 앞이 캄캄했으나 한편으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 집을 짓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건축주들에게 늘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설파하면서 정작 전 아파트에서 살던 게 마음에 걸렸거든요.”

마침 판교에 설계를 진행 중이던 김 소장은 인근에 70평 남짓 비교적 저렴하게 나온 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동쪽으로 용인서울고속도로가 지나는 주택가의 초입이었다. 김 소장은 아내와 상의한 뒤 서울에 각자 떨어져 살고 있는 장인ㆍ장모, 처제 부부에게 집을 지어 다 같이 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첫 번째 이유는 물론 경제적인 거였죠. 하지만 같이 사는 삶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공간을 영리하게 나누면 불편함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을 수 있거든요. 다행히 세 가족이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세 집의 뜻이 모인 뒤에는 보증금과 공사비의 시간 싸움이었다. 먼저 대출을 받아 땅을 산 뒤 김 소장 집의 전세보증금으로 초기 공사비를 대고, 장인ㆍ장모 집의 보증금으로 중도금을, 마지막으로 처제네 집 보증금으로 잔금을 치렀다. 공사 막바지 한 달 반 정도는 1.5룸 구조의 처제네 집에서 아홉 식구가 살기도 했다.

집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김 소장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인터뷰했다. 현관문이 두 개까지만 허용되는 지역이라 두 채로 나누는 건 바꿀 수 없지만, 그 안에서 가능한 모든 요구를 수용하고자 했다.

장모는 김장을 담그고 작게나마 화초를 가꿀 수 있는 마당을, 장인은 부인과 채널 다툼을 하지 않아도 되는 TV실을 원했다. 각종 아웃도어와 레포츠를 섭렵한 처제 부부는 장비를 보관하고 가끔 캠핑도 할 수 있는 옥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소장네는 잠시도 엄마, 아빠를 가만히 두지 않는 개구쟁이 아들들을 위한 놀이터이자 건축가의 오랜 로망인 서재를 갖춘 공간이어야 했다.

 

 

 

땅콩집처럼 양쪽이 똑 같은 구조로 된 집은 싫었어요. 모처럼 아파트와 빌라에서 탈출했는데 가족이 원하는 그림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한 쪽엔 김 소장네 네 식구가, 다른 한쪽엔 처제네 세 식구와 장인ㆍ장모가 자리 잡았다. 먼저 할 일은 두 집을 적당히 떨어뜨리는 동시에 적당히 연결하는 것이다. 두 집은 각각 독립된 현관문을 가지지만 1층의 다용도실을 통해 내부에서 내부로 이동할 수 있다.

지하실도 연결할 수 있었지만 공간의 독립성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뒀다. 한쪽은 아이들 놀이터, 다른 한쪽은 홈시어터를 갖춘 장인의 미디어룸으로 꾸몄다.

 

 

 

내부 구조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파트와 정반대’다. 김 소장은 큰 아들이 유치원 친구들에게 자랑처럼 말하는 “우리 집엔 거실이 10개야”가 이 집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라고 했다.

“이전엔 아이들 사이에서 브랜드 아파트가 자랑거리였다고 해요. ‘래미안에 산다’고 하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거죠. 지금은 다릅니다. 아이가 친구들에게 평상에서 책을 봤다, 지하실에서 미끄럼틀을 탔다고 하면 눈이 휘둥그래진대요.”

 

 

 

이런 거실이 가능한 비결은 거실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김 소장은 침실, 다용도실 등 문 달린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거실이라 부른다. 주방도, 공부하는 곳도, 다락도 모두 거실이다. 곳곳에 분산된 크고 작은 거실들은 단차를 통해 한층 복잡하고 풍성해진다.

현관에서 계단 3개를 오르면 주방이 나오고 작은 거실에서 계단 3개를 오르면 좀 더 큰 거실로 연결되는 구조는, 큰 거실 하나를 방들이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 구조와 대조적이다. 아이들에게 이 계단은 타 넘고 기대 앉는 놀이기구이자 공간을 다차원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교보재다.

 

 

 

|설계 : ㈜유타건축사사무소   
|건물규모 : 지하 1층, 지상 2층
|대지면적 : 235.30㎡
|건축면적 : 117.48㎡
|연면적 : 294.79㎡
|건폐율 : 49.93%
|적률 : 88.69%
|최고높이 : 9.85m
|공법 : 철근콘크리트조, 경량목구조
|구조재 : 구조목, 컬러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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