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을 보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그니쳐(Signature)’ 라고 대답한다. 건축학도는 건축물을 보며 이 건축가의 특징은 무엇일까를 찾아내려 한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관심이 크고 화려한 건물에서 주택으로 옮겨지면서 의문이 생겼다. 건축물에 건축가의 특징을 넣는 것이, 다시 말해, 건축주 취향으로 꽉 채워져야 할 공간에 다른 사람의 취향을 넣는다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일까? 재귀당의 박현근 건축가는 이런 의문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설계자 고집이 아닌 건축주에게 맞추는 설계
건축가에게 있어 설계는 자존심이다. 자신이 원하고 추구하는 방향을 배제하고 온전히 건축주의 요구를 수용해 설계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박현근 건축가는 건축가의 색을 최대한 빼고 건축주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최고의 설계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재귀당의 건축을 보면 구차한 겉멋을 뺀 솔직함이 느껴진다. 요란한 화장을 안 해도 아름다운 여성처럼, 좋은 눈빛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질리지 않는 중 후한 매력을 발한다.
“특별하게 이걸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땅의 모양,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점 그리고 구조적 특징 등 모든 것을 반영해 설계를 하는데 그게 기하학적 구조로 많이 표현이 되는 그런 것은 있는 것 같아요.”
집 짓기는 결혼 과정과 같다
집은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집 짓기는 생각만큼 쉬운 작업이 아니다. 집은 설계사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박현근 건축가는 힘주어 말한다. 많은 건축주들이 설계사를 찾아와 설계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려고 한다. 집은 건축주와 설계사, 시공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 어려움을 오랜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면서 완성하는 것이 집이다. 자신의 집을 짓는 일을 설계사에게 모두 맡긴다면 그 의미가 상실된다고 말한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짧게는 6-7 개월 길게는 1년 반 이상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다.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2-30 년을 함께 보내야 할 집, 큰 그림을 보며 나가는 지혜와 믿음이 필요하다.
원하는 집을 지어야 할까? 미래를 생각해서 잘 팔릴 집을 지어야 할까?
주택이 재화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한국 사회에서 단순히 내 마음에만 드는 집을 만드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내가 살지만 앞으로 팔 것 이기 에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도 생각한 집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집은 끝나다.
집을 짓는 목적은 자신이 살고 싶은 공간에서 살기 위해서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좋지 않다. 전 재산을 들여 지은 집인데 뭔가 뒤틀리면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것처럼, 취향이 아닌 옷을 입을 입은 것처럼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
자신이 살 집이면 자신이 원하는 취향에 맞는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집에서 생활할 때의 기분은 맞춤 옷을 입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감을 준다.
국내 주택 트렌드의 변화는 소형화, 그리고 공유
국내 주거 문화가 근 5-6년 사이에 급속하게 변화해 왔다. 집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으로서 국내 주택 트렌드의 변화가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에 대한 예측을 물었다. 박현근 소장은 ‘주택의 소형화’와 ‘공유’라는 두 단어를 꺼냈다.
가족 수가 적어지고 또 땅값이 높아지면서 최소한의 부지에서 최대의 공간을 만들려는 요구와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집 내부 구조적으로는 응접실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구 이웃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외부 거실이 많아질 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요즘 화두가 외로움이거든요. 집 자체에 외로움을 상쇄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많이 찾을 거예요. 공간의 크기에 상관없이 취미 공간을 많이 넣을 겁니다”
어떤 재귀당을 꿈꾸나?
박현근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앞으로의 재귀당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미래의 재귀당은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몇 년 후에는 이만큼 성장해서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무척 감성적이고 답변이 돌아왔다.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건축주가 좋아하는 집을 같이 찾아가는 여행 같은 건축을 하고 싶어요. 건축주가 감동할 만한 공간을 에너지 될 때까지 하려고 합니다.”